지압원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도 해야 하고
과일도 손수 깎아 먹어야 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해 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모든 것을 혼자 해야만 한다.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 토요일 아내가 지압원에 왔다.
과일 깎은 껍질이 그릇에 제법 담겨 있었다.
아내가 말했다.
"과일 누가 깎았노?"하고 물었다.
"내가 깎아 먹었다."고 하니 잘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시 물었다. "정말 당신이 깎았나? 누가 와서 깎아 주었나?"
하면서 숨겨 놓은 여자가 있냐는 식의 강한 어조로 말하는데
"숨겨놓은 여자가 있으면 과일 깎아 주러 오겠나?" 하고
말하니 잘 믿어지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일요일이 되어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내가 쟁반에
감을 가지고 와서 나보고 깎아 보라고 했다.
빨리 깎아 보라고 재촉을 한다.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깍지 않았다.
내가 옛날에 주방장이었던 사실을 잊은 모양이었다.
눈감고 살아 온 것도 어언 이십년이 다 되었는데 아내까지 나를
못 믿겠다고 저러는데 일반인들은 시각장애인 나를 더욱 못 믿을
수밖에.....
그리고 지압원 청소나 어항청소를 직접 한다고 하니 보통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니 나만 보면 거의 다 멀쩡하고 시각장애인 같지가 않다고 하는데,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 갈 뿐이다.
정작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나를 정상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가끔씩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조만간에 안과협회에 가서 "이 사람은 안보임." 이라는 증명서를
받아와서 지압원에 붙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면 다들 믿을런지, 너무 자신 있게 생활하여도 엉뚱한 소리를
들으니 앞으로 살아갈 일이 캄캄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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