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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공부많이 하면 버릇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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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25-07-24 15:57 조회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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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명한 이후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두 아들이다. 두 눈을 잃었을 때 큰아들 우성이가 여덟 살이었고 작은아들 규민이는 다섯 살이었다. 중국집이나 카페를 운영할 때 큰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집 아이들처럼 학원에도 보내고 먹이고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실명하고 나서는 사정이 달랐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 시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내는 살림 꾸리랴 나를 돌보랴 바빠서 아이들 공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성적은 자꾸 떨어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초등학교 때에는 그 차이를 몰랐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은 뒤떨어졌다.

공부만 잘한다고 인생을 잘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더 잘 해주길 바라는 마음까지 없는 것은 안니었다. 부모가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공부를 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못해주는 것이 안타까웠다. 특히 공부를 잘 하는데 뒷받침을 못해주면 부모로서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나를 위로하려고 농담처럼 아이들에게 내가 말했다.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면 어떻게 라도 해보겠지만 공부를 어중간하게 하면 어중간한 인생 살며 백수 되기 딱 쉽다. 그러면 그게 더 힘들지 않겠나. 그러니 아주 잘할 거 아니면 열심히 공부하지 마라. 열심히 공부하면 그것도 버릇된다. 그러니 조금만 해라." 했다. 그랬더니 이녀석들이 어린 마음에 진짜인줄 알고 아예 책을 덮어버렸다.

큰아들은 야간공고에 입학했다. 낮에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전구공장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학교 가서 공부하고 오면 밤 열시 정도가 되었다. 작은아들도 방학 때에는 제 형을 따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저희들 필요한 것도 사고 용돈도 썼다. 일부는 집에 가져와서 제 엄마에게 맡기기도 했다.

내가 1주일에 용돈으로 주는 1~2천 원 정도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저희 스스로 용돈을 벌어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던데 . 아빠로서 가슴은 아팠지만 일을 다니는걸 막지는 않았다. 아이들도 공부보다는 일하는 걸 좋아했다.

공부만 해도 대학에 가네 못가네 할 판인데 공장에 다니면서야 말 할 것도 없었다. 성적이 좋아서 대학을 갈수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내야했겠지만 우리 형편에 무리였던 건 사실이었다.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군데 이직을 하다가 지금은 삼성전기에 잘 다니고 있다.

작은아들도 공고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할 때까지 실습을 나갔던 금형회사에서 줄곧 일했다. 제대한 뒤에도 다시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 제 몫을 열힘히 하고 있다. 공부를 잘하고 뒷받침을 잘 해주었더라면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바르고 곧게 자라주었고 자신의 위치를 다져가고 있다.

나는 두 아들이 큰 문제없이 건강하고 성실하게 성장해준 것이 자랑스럽고 세상에 어느 보석보다도 더 값지다. 지금이라도 공부하겠다하면 대학에 보내주고 싶은 게 내 솔질한 마음이다. 아이들이 가끔 아빠 때문에 우리 인생이 꼬였다고 농담처럼 말을 할 때면 미안하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을 지혜롭게 잘 이겨낸 힘은 앞으로 두 아들이 살아가는 데 좋은 거름이 될 걸라고 믿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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