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는 1956년 부산의 사하구 괴정동 성당 앞 작은 판잣집에서
조월근과 한순자의 육 남매 중 네 번째로 태어났다.
피난민들로 이루어진 그곳은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터라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어렵게 살았다.
물론 만호의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호를 낳은 지 채 열흘도 안 되어 어머니는 감천 고개에 마련한
작은 텃밭에 오이며 호박 등을 여러 가지 채소를 심어 두고, 매일매
일 물을 주며 빨리 자라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어머니께서는 이 야채들이 하루빨리 쑥쑥 커서 어느 정도 자라
면 시장에 내다 팔 생각이었다.
"어무이!"
"와?"
"막내 운다. 어르고 달래도 계속 우는데 우짜노?"
어려운 살림 탓에 몸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어머니가 퉁퉁 부은
얼굴로 연신 호미질을 하며 말했다.
"부엌에 쌀뜨물 안 있나. 그거 먹이라. 그라믄 딱 그친데이!"
"만호 저마는 참 먹는 것도 벨나네!"
씩씩거리며 질퍽한 밭두렁을 내달리는 큰아들의 뒷모습을 어머니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참 클 나이에 잘 먹이지 못한
큰아들의 가느다란 다리가 오늘 따라 유달리 마음에 걸렸다.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였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허리를 펴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오실 채비
를 하신다.
감천 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어서면 가난한 피난민 촌이지만 집
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그리고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그 중에
는 어머니도 계셨다. 어머니는 담장 밖에서 어린 만호를 업고 서성
이는 큰딸을 보자 지친 기색도 없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만호 보느라 수고 많았데이. 드가자. 밥 묵으야제?"
"아니라예. 어무이가 더 고생했으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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