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안은 만호의 공허한 외침만이 뱅글뱅글 맴돌았다. 그때
불쑥 구덩이 밖에서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영은이었다. 만호는 하마터면 찔끔 눈물이 나올 뻔했다.
"여, 영은아....."
"만, 만호니....? 여기 있어?"
영은이는 구덩이에 얼굴을 대고 어두컴컴한 구덩이 안을 살피기
라도 하듯 그 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구덩이 안에서 밖을 볼
때에는 훤히 잘 보이지만, 구덩이 밖에서 구덩이 안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만호는 꿀꺽 침을 삼켰다.
"영은아, 내 여기 있데이."
영은이의 활짝 웃는 얼굴이 보였다.
하늘을 가린 영은이의 얼굴이, 만호가 보기에는 하늘 그자체로
푸르게 빛나 보였다.
"니 어디 갔었노?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찾아 다이다가..."
영은이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우물거렸다.
"미안해... 화장실이 급해서....."
영은이가 기어들어가는 못소리로 중얼거렸다.
만호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 그, 그래..."
만호는 구덩이 밖에 있는 영은이를 쳐다보는 것이 쑥스러웠고
구덩이 밖의 영은이 역시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여
기에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만호는 영은이에게 말했다.
"영은이 니, 혼자 갈 수 있겠나? 선생님을 찾아서 여까지 불러올
수 있겠나?"
영은이가 말없이 구덩이 안을 바라보다 결심한 듯 일어섰다.
"해볼게. 기다려 만호야."
그러나 이내 만호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는
숲 속 안쪽으로 꽤 들어 온 길이었기에 영은이를 혼자 보낸다는 것
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만호가 서둘러 외쳤다.
"영은아, 그라지 말고, 막대기 하나만 구해 주라. 내가 나갈게."
"응? 아, 알았어."
영은이가 나뭇가지 하나를 찾아 구덩이 안으로 던져 주었다.
만호는 발을 딛고 올라갈 수 있게 구덩이 벽의 흙을 파기 시작했
다. 여기저기 구멍을 파서 발판을 만든다면 쉽게 올라갈 것 같았다.
구덩이 아래에서 만호가 올라갈 발판을 만드는 사이, 영은이는
사방을 향해 외치고 또 외쳤다.
영은이의 못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아무도 없어요? 도와주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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