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눈이 잘 안 보여....."
영은이의 그 말에 만호는 깜짝 놀랐다. 눈이 잘 안 보인다니, 이
무슨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눈이 .... 잘 안 보인다꼬?"
영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몬.... 내도 잘 안 보이나?"
"희미하게 보여. 형체만...."
만호는 물끄러미 영은이를 바라보았다.
그래서였던가?
영은이가 공책에 코를 박고 필기만 열심히 하는 것도, 개구리가
든 상자를 마냥 더듬은 것도, 쓰레기통을 보지 못한 채 달리다
넘어진 것도, 만호는 그제야 영은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자 만호는 갑자기 영은이가 안쓰러워졌다.
"얼마나.... 안 보이는데?"
"눈 가까이에 있는 건 보이는데....."
영은이는 만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잘 안보인다는 뜻이었다. 만호는 뚫어지게 영은이를 바라보았다.
"서울에 있을 때, 큰 병원에 갔었는데.....
외국에 가서 수술해야 한 대. 아빠가 내 수술비 마련하려고 이곳의
회사로 오신거야. 난 여기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
만호는 커다란 눈망울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영은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영은이와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졌다.
그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수업 종쳤다. 들 가자."
만호는 미안했다. 그동안 영은이의 속사정도 모르고 괴롭히는
녀석들을 말리지 못한 것도 속상했고, 자기 역시 말없이 동조를
한 것에 화가 났다. 만호는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그러다 문득 멈
춰 뒤를 돌아보았다. 영은이가 조심스레 걸어오고 있었다.
'매일 저렇게 조심스럽게 살았구나. 영은이는.'
만호는 옆에 있던 기다란 막대기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영은이에게 내밀었다.
"니 때문에 늦겠다. 이거 잡고 따라온나."
만호는 막대기 한 쪽을 영은이에게 내밀었다.
영은이의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고마워. 만호야."
성큼성큼 걷는 만호를 따라서 영은이가 졸졸 따라왔다. 만호는
처음으로 좋은 일을 한 것만 같아서 기분이 우쭐해졌다. 그렇게 앞서
걷고 있을 때 막대기가 갑자기 출렁거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철퍼덕!"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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