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는 가스나캉 친구 안 한다!"
만호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찔끔 놀라 영은이를 바라
보았다. 만호가 그렇게 불통거렸는데도 영은이는 웃고 있었다.
영은이의 눈은 까맣고 동그랬다. 만호는 그런 영은이의 눈을 멀
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옆 분단의 수철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너그 집 억수로 부잔갑다. 모두 새것이네?"
수철이는 영은이의 필통과 연필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영은이가 수철이 쪽을 돌아보았다.
영은이가 자기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필통과 연필들을 제 쪽
으로 당기며 수철이에게 뭐라고 한마디 말하려고 했다. 수철이가
그 모습을 아니꼬운 듯 바라보다 냅다 소리를 질렀다.
"서울 가스나들은 전부 깍쟁이라 카드만, 니 물건 빼앗아 갈까봐
그리 감싸는 기가?"
수철이는 아주 화가 난다는 투로 말했다.
예전 같으면 만호 역시 여자애들을 놀리는 재미로 그랬겠지만 왠
일인지 영은이에게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만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수철이가 지우개을 요청한다는 얼굴로 만호를 바라보며
영은이에게 무섭게 몰아부치듯 말했다.
"영은아! 그래 얼마나 새것인지 어디 좀 보제이."
그러면서 영은이의 연필을 빼앗아 이리저리 둘러보던 수철이가
픽 웃으며 만호에게 연필을 내밀었다.
만호는 얼떨결에 수철이가 건네준 연필을 받아들였다.
속으로는 그런 수철이에게 욕을 퍼붓고 있었다.
'수철이 니는 와 그리 나서는데?'
그때 영은이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갖고 싶으면 가져. 줄게."
어쩌면 영은이는 아무 뜻 없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
은이의 그 말이 수철이와 만호 그리고 이 동네의 가난한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수철이였다.
"가스나. 우리가 거진 줄 아나?"
"서울 가스나 몬 땠다."
"니 혼 좀 나볼래?"
아이들이 큰소리로 겁주는 소리가 만호의 귀에는 윙윙거리느 파
리 소리만큼 작게 들려왔다. 그러나 영은이의 겁먹을 듯한 목소리는
우레와 같은 큰소리로 들려왔다.
"나, 나는 그냥.... 너희들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서....."
만호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울먹이는 영은이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영은이의 수난시대가 예고되는 순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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