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는 수철의 시선을 따라 앞쪽 교단을 쳐다봤다.
그제서야 선생님 곁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작은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다소곳한 얼굴로 서 있는 여자 아이였다.
만호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곱네....'
만호의 심장이 왠지 모르게 콩닥거렸다. 꼭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여기 애들처럼 꼬질꼬질하지도 않았고 얼굴에 땟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곱게 땋아 내린 머리도 그렇고 나풀거리는 분홍 원피스를
입은 모양새도 그랬다.
무엇보다 발그레한 볼에 커다란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였다.
"오늘 우리 반에 새로 전학 온 송영은입니다. 영은이는 서울서
살다 아버지를 따라 여기로 왔습니다. 그리고... 몸이 좀 아프니까
여러분이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영은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몸이 야윈 게 아프게 생겼네... 그래도 눈은 참 이쁘네.'
만호는 서울에서 왔다는 이 여자아이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만호 옆자리가 비었네? 영은아, 저기 만호 옆에 가 앉아라."
영은이가 천천히 만호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의자를 빼고
앉았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공책과 필통을 꺼내어 자신의 앞쪽에
가지런히 놓았다. 순간 만호는 기분이 나빠졌다.
'누가 훔쳐간다꼬, 저리, 자기 코 앞에 바싹 놓는 기고. 나를 어
떻게 보고....'
수업시간 내내 영은이는 책상에 코를 박은 모양새로 뚫어져라
책만 바라보았다. 가끔 선생님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공책에 필기
를 하느라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영은이의 모든 물건은 영은이 코 앞에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만호가 너무 책상을 넓게 써서 영은이가 한쪽
으로 밀려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호는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기분은 나쁜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옆에 앉은 영은이에게 신경이 쓰였다.
수업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만호는 모든 것에 조심스러웠다. 쉬는 시간이 되자,
만호는 지친 듯이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때 어디선가 향기로
운 꽃 냄새가 피어났다. 만호는 코를 실룩거렸다.
만호는 힐끔 영은이를 쳐다보다가 놀라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영은이가 빤히 만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만호의 귓가로 날아들었다.
"우리 사이 좋은 친구가 되자."
영은이는 목소리도 맑았다.
'이 가스나는 우째 이리 목소리도 곱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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