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끝나가고 드디어 만호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차라리 공장에 취직을 할
까 생각도 했지만 큰형에게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다.
"내 하나로 족하다. 니는 원 없이 공부하게 해줄끼다."
만호는 큰형의 말을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만호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 어머니의 병세가 약간 나아지기도
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어서 그런지, 만호의 부축을 받으며
마당을 걸을 때도 있었다.
"이제 마이 좋아졌다. 이대로라면 봄나들이도 가겠다. 우리 만호
중학교 들어가면 다 같이 봄 꽃 구경 한 번 가보자."
어머니는 오랜 병마에 수척해졌지만 봄꽃처럼 예쁘게 웃으셨다.
만호는 꼭 그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건강이 좋아진 것은 잠깐 뿐이었다. 온 가족의
바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의 병은 점
점 깊어지셨다.
계절이 두 번 바뀐 제법 찬 가을날이 되었을 때는 아예 마당에
나오지도 못하셨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 하셨다.
그리고 가을의 맑은 어느 날, 슬픈 일은 현실이 되었다.
그날 따라 하루종일 유난히도 하늘이 높고 너무 푸러렀다. 어머
니 역시 맑은 가을날이 좋으신지 내내 웃으시며 들과 나무들을 둘
러보셨다. 만호는 어머니 옆에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꼭 그러고만 싶었다.
"저 노랗고 빨간 단풍 좀 보그라. 우리 만호랑 손잡고 단풍놀이
갔음 좋겠다."
"어무이, 다 나으면 그때 가자."
"내는 다 나은 것 같다. 우리 집 앞이라도 걸을까? 만호야?"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말씀하셨다. 만호는 걱정스런 얼굴로 어
머니에게 물었다.
"괘안아예? 어무이? 걸을 수 있겠는교?"
어머니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셨다'. 오늘따라 어머니의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만호는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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