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이의 웃음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아쉬운 얼굴이었다. 만호
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만호는 짐짓 씩씩하게 영은
이와 맞잡은 막대기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안 보인다꼬 공부를 모난다는 건, 공부 모나는 아들이 말하는
핑계인기라. 거 누구더라, 맞다. 헬렌켈러! 그 아도 안 보였는 게
열심해 공부했다 아이가! 그 뿐 아이다. 모짜르트도 귀가 안 들린다
캤는데 멋진 음악을 만들었다 아이가!"
영은이가 웃으며 만호를 쳐다보았다.
"베토벤."
"아 맞다. 베토벤. 그러니까네 내 말은, 그런거는 아무 것도 아이란
말이다. 중요한 거는 그기 아이라...."
만호는 영은이에게 힘을 주어 말했다. 영은이가 계단을 오르다
말고 만호를 쳐다보았다.
"만호야...."
만호는 자신의 멋진 말에 영은이가 감동을 한 거라고 혼자 생각
했다. 그래서 기분이 한껏 날아갈 듯 가벼웠다. 만호는 뒤돌아 영
은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영은이의 눈빛이 한없이 슬프고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만호야..... 나 미국에 가."
"뭐? 미, 미국?"
만호는 마치 세상이 정지한 듯 우뚝 멈춰섰다.
마른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만호가 더듬더듬 물었다.
"어. 언제 가노?"
".....내일."
너무 빨랐다. 만호는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온 영은이와의 이별
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라모...언제 돌아오노?" "....."
영은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만호는 초조하게 영은이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영은이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와? 안 오나?"
"......."
이번에는 만호가 할 말을 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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