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난방 되는대로 만호는 투덜거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상황을 견디기 어려울 만치 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영은이가 옷에 묻은 흙을 탁탁 털며 제법 의젓하게 말했다.
"나는 매번 너한테 도움만 받았잖아.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
을 너에게 보여 줄려고!"
제법 어른스러운 말투였다. 만호는 그런 영은이를 바라보았다.
영은이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웃었다. 그것이
영은이의 좋은 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숲 속으로 들어가 큰나무 밑에서 비를 피
하는 것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구덩이 안으로 들어온 영은이가 만
호는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니 말은 고마운데, 그냥 가만히 있지....."
영은이가 만호의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커다란 눈
망울로 만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아래서 밀어줄 테니까, 만호 네가 위로 올라가."
"뭐, 뭐라?"
만호는 깜짝놀랐다. 영은이는 자신이 아래서 받쳐줄 테니, 자신
을 발판삼아 구덩이 밖으로 나가라는 거였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만호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영은이를
그저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만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영은이가 툭툭 만호의 옷을 털어주며 속삭엿다.
"나도 뭔가 너를 도와주고 싶단 말야. 서로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라고 그랬단 말이야."
"치, 친구?"
만호는 친구라는 말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왜 그 말에 이렇게 가
슴이 뛰는지 모르겠지만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달콤하게 들렸다.
영은이가 만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우리.... 친구 맞지?"
만호가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하모 하모. 친, 친구다!"
"고마워. 만호야. 매번 네 도움만 받았는데, 이번에는 내가 도와
줄 수 있을 것 같아!"
영은이는 항상 그런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만 받고,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영은이를 만호는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니가 와 도움만 받았노......니도 내 많이 도와줬다 아이가."
그 말에 영은이가 활짝 웃었다.
"그래? 뭘? 내가 뭘 도와줬는데?"
영은이는 궁금한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 동그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만호를 바라보았다.
"그, 그기는 말이다..... 가스나! 뭘 그런 걸 물어 쌌노! 도와줬
다면 도와준 거지!"
"응."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