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는 괴정 삼거리에 위치한 병원에서 눈을 떴다. 처음에는 꿈
인 줄 알았다. 세상이 온통 흰색이었다. 하얀 벽과 하얀 커튼 그리
고 하얀 침대...
만호가 꿈이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곁에 있던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호 일마 언제고 사고 칠 줄 알았으예!"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인 기다. 괘안타."
만호는 슬며시 실눈을 떴다. 어머니께서는 많이 놀란 듯 얼굴이
하얗게 변한 채 만호의 손을 꼬옥 잡고 계셨다. 만호는 어머니에
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무이가 많이 놀랐는 갑네... 죄송합니더. 어무이...'
만호는 눈을 떠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괜찬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호가 눈을 막 뜨려는
순간, 큰누나의 화난 목소리가 들여왔다. 만호는 화들짝 놀라며
그대로 눈을 꼬옥 감아 버렸다.
"어무이가 자꾸 싸고도이, 만호가 더 버릇이 없어지는 기라예.
깨어나기만 하몬 내 일마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어머니 옆에서 큰형은 마치 자신의 잘못인양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더. 어무이. 지가 쪼매만 일찍 갔어도...."
"아이다. 그기 와 니 잘못이고. 너무 뭐락 카지 말그라. 그래도
우리 만호가 친구는 구했다 아이가."
그제야 만호는 친구 수철이가 떠올랐다.
'맞다. 수철이! 수철이는 어찌 되쁘렀을꼬? 안 다쳤나?'
만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옆 침상을 보기 위해 살짝 눈을 떠
보았다. 그런데 옆 침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수철이는 괘안갑네. 여그 없는 것 보이.'
만호는 안심이 되어 살며시 다시 눈을 돌렸다. 바로 그때 큰누나
와 만호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대번에 호통소리가 날아들었다.
"이노무 자슥! 정신이 들었으면 퍼뜩 일나지 않고, 뭐 잘했다꼬
뱁새눈으로 살피노, 살피길!"
'으아, 역시 큰누야는 무서버!'
만호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가족들을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만
호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만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무이..... 잘못했심더...."
어머니는 말없이 그런 만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만호가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하였다.
'어?몸이 말을 안 듣네....'
그제서야 만호는 자신의 엉덩이에 깁스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엉덩이에 금이 갔기 때문이었다.
"그리 팔랑거리고 뛰 다이더만, 궁딩이에 금 가소, 꼴 좋네!"
만호가 입을 삐죽거렸다. 오늘은 진짜로 큰누나가 미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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