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누나와 큰형 앞에서 약속을 한 지 보름도 되지 않은 때였
다. 만호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큰누나가 만호를 째려보았다.
만호는 마당에 우뚝 서서 큰누나의 눈치만 살폈다.
"빨리 올라 캤는데... 서커스단이 왔다 아이가.... 그래서 아이스
께끼를 모두 팔라꼬 하다 보이... 해가 지는 것도 몰랐다..."
만호는 우물주물 고개를 푹 숙인 채 큰누나를 향해 말했다.
큰누나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따라온나."
만호는 옷을 탁탁 털고 큰누나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큰누나는 만호가 앉자마자 시험지를 휙 던졌다. 오늘 보기로 한
수학 시험지였다.
"퍼뜩 풀어라."
만호는 아무 말 없이 책상 앞에 앉아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
런데 문제가 조금 어려웠다. 만호는 옆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느질을 하고 있는 큰누나를 힐끔 훔쳐보았다.
고집스레 꾹 담분 입술이 마구 욕을 퍼붓고 있는 것만 같아 두렵
고 무서웠다. 큰누나의 저런 얼굴은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만호는 최대한 열심히 문제를 풀었지만 자신은 없었다. 만호가 문
제를 다 풀고 휴우~ 하고 긴 한숨을 내 놓기도 전, 옆에서 무심한
척 바느질을 하던 큰누나가 낚아채듯 문제지를 빼앗아갔다. 그 통
에 만호는 그만 숨을 삼킨 채 큰누나의 눈치만 살폈다.
휘리릭! 문제지가 소리도 요란하게 뒷장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나고,
곧이어 큰누나의 벼락같은 음성이 날아들었다.
"꼴 좋구마. 이리 공부하려면 때리치 뿌라!"
큰누나는 문제지를 휘익 하고 던져버렸다. 공중으로 파다닥 튀
어오르던 문제지가 살포시 떨어져 내렸다. 만호는 한숨을 내쉬었
다. 보나마나 소나기 내리듯 쭉죽 틀린 것은 아닌가? 아는 것은
최대한 성의껏 풀었는데, 그래도 많이 틀린 모양이다. 그때 큰 누
나가 구석에 있는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
"다리 걷그라. 퍼뜩!"
만호는 말없이 일어나 종아리를 대고 돌아섰다.
탁!탁!탁!
회초리가 공중에서 요란하게 출렁거렸다. 가늘고 단단한 대나무
로 만든 회초리는 만호가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큰누나가 마련
한 것이었다.
어디서 그렇게 단단한 회초리를 가져왔는지 한번 휘두를 때마다
쌔앵 소리를 내며 휘어지면서도 절대 부러지는 법이 없었다.
쌔앵! 철썩!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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