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과 형수가 노력한 덕에 어머니가 아플 때 진 빚은 거의 다
갚았다. 큰형은 내년 봄부터는 만호가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만호도 이제 학교에 가면 정말로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고 다짐을 하던 차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또 사고를 치는 바람
에, 모은 돈을 모두 써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만호는 너무 화가 나서 아버지의 얼굴도 보기 싫었다. 그렇지만
큰형은 오히려 담담했다.
"괘안타. 돈이야 또 벌면 되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날 밤 늦게까지 큰형과 형수의 방에서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만호는 아버지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주무시는 안방 쪽을
노려보며 공장에라고 들어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벌어도 시원치 않은 살림에 턱하니 빚까지 안기는 아버지가 미
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만호는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접어버렸다.
그리고는 유리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유리를 녹여서 유리잔이나 화병 등을 만들어 내는 유리공장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뜨거운 불 앞에서 유리를 녹이다 보면 한 겨울에도 코끝에 구슬
땀이 맺히곤 하였다. 또한 녹인 유리물을 들고 원형 틀까지 운반
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몸놀림이 필요했다.
만호는 초보라서 원형 틀에 유리물을 붓는 일같은 것은 하지 못
했다. 그저 저만치 떨어져서 형들과 아저씨들이 일을 잘 할 수 있
도록 온갖 심부름을 다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혹시 실수라도 하여 유리 자재를 부수는 날에는 월급
이 깎이는 것은 물론이고, 형들과 아저씨들에게 돌아가며 욕을 먹
었다. 그래도 욕을 먹는 건 참을 만 했다.
만호가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100도가 넘는 고온 속에서 쉴
새 없이 일을 하다 보면 잠깐잠깐 정신이 나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사고가 터지는 것이 제일 무서웠다.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때여서 작은 실수도 어김없이
큰 사고로 이어졌다. 한번은 유리잔을 만드는 주물팀에서 펄펄 끓
는 유리물을 엎질러 일하던 형의 다리에 화상을 입는 사고가 났다.
옆에 있는 아저씨들이 들쳐 업고 시내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그
형은 다리를 절게 되었다.
만호는 그 일을 겪고 나서 유리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무섭고 두
렵기만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지만 아무런 안전조치가 되어 있
지 않은 곳에서 일한다는 것이 두려워 자꾸만 몸이 움츠려졌다.
만호가 겁이 나 조심스레 일을 하면 사장님은 게으러다고 타박을
했다. 결국 만호는 유리공장에서 겨우 1년을 채우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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