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만호는 주방과 홀에서 쓰는 몇 가지 중국말을 적어
두었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외웠다.
주방장에게 한 번 혼이 나고 난 후, 만호는 주방장의 눈치를 슬
금슬금 살폈다. 덩치도 산적처럼 크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해서 보
는 것만으로도 겁이 났다.
그러나 산적같은 주방장은 뒤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일
을 할 때는 늘 목소리가 큰 사람이었고, 만호뿐만 아니라 여러 사
람에게 호통을 치며 일을 지휘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만호는 주방장의 성격이 원래 그런 사람
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만호가 몇 마디 중국말을 익히고 몸을 부지
런히 놀리자, 어느 날부턴가 주방장은 더 이상 만호를 야단치지
않았다. 오히려 점심이나 저녁 주문 중에 조금 양이 많이 만들어
진 것이 있을 때는 말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만호를 곁으로 불
러 먹으라고 주기도 했다.
얼굴의 반 이상이 수염으로 덮여서 산적같은 얼굴을 하고 있음
에도 활짝 웃으며 만호 앞으로 요리를 내밀었다. 먹으라는 시늉을
하며 씨익 웃는 주방장의 얼굴은 천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엔 겁을 잔뜩 먹었지만 그런 주방장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
게 되자 만호는 저도 모르게 해맑게 웃었다.
주방장이 만호의 등을 툭툭 쳐줬다. 망치로 맞은 듯 둔탁한 소리
가 났지만 만호는 기분이 좋았다. 이제 주방장이 자신을 주방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주방장은 종종 실수로 잘못 만든 요리를 주방 사람들
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남은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해서 저녁 대
신 주기도 했다. 만호는 비록 몸은 고되었지만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주방에서 일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만호는 중국집에서 중고참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 중국집의 종업원들은 빈번히 나가고 들어오고 했다.
한곳에 오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중국집에서 먹는 식사가 달달하니 맛있었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신기한 요리이기도 했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한
몫 했다. 그러나 매일 먹다 보니 기름기가 많아 속이 느글거렸다.
주로 아침에는 빵을 먹고 밥을 먹는 것은 일주일에 2~3회 정도
였다. 안에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중국식 빵이었는데 매우 딱
딱한 빵이었다. 점심은 거의 우동이었고, 해물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는 걸쭉한 국물로만 된 우동이었다. 그나마 자장면이 가장
나았는데 그건 토요일 점심에만 나오는 특별 요리였다. 그래서 그
런지 만호를 비롯한 종업원들은 자장면을 더 많이 먹고 싶어 했다.
한 그릇을 먹고 두 그릇을 먹고 세 그릇을 먹는 아이들도 있었
다. 맛잇는 음식을 양껏 먹겠다는 욕심을 부려 배가 불러도 먹는
것이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밤새 배탈에 시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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