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는 할 말이 없었다. 싸움을 말리려다 우연치 않게 생긴 사고
를 가지고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도 알 길이 없었고, 무엇보다 싸
움을 말리고 경찰서에 가서 중재를 한 끝에 서로가 피해 없도록
잘 마무리 지었는데, 그 모든 것이 다 필요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만호는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듣고 보이 우리 아도 잘 한것은 없지만, 워낙에 큰돈이 들어가
가 우짤 수가 없네예. 치료비나 물어주소."
아주머니는 당당하게 치료비를 요구했다. 처음엔 만호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경찰서에 가
서 그날 일을 듣는다면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것과 별도로 만호를 상해죄로 고소하겠다
고했다. 더 기분이 나쁜 건, 정작 싸움을 주도했던 라면장은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뒤로 물러나 있었다는 것이었다. 자신과
싸운 다른 청년들과는 일이 마무리 되었으니 이번 일은 자신이 상
관할 바가 아니라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만호는 또다시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 사장님도 어쩔 수가 없
다는 듯이, 경찰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좋게좋게 돈을 주어 돌려보
내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만호를 설득했다.
만호가 돈을 줄 수 없다며 경찰서에 가서 진실을 가리자고 하자,
아주머니는 바로 경찰서로 달려가 만호를 신고해 버렸다. 정말 억
울한 심정이었다. 하는 수 없이 만호는 그동안 모아 두었던 적금
을 해약하였다.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차곡차곡 모아온 돈이었다. 새
로 집을 다 지으면 형수를 위해 예쁜 주방가구를 들여놔 주어야지
생각하며 기쁘게 모은 적금이었다.
그런 돈을, 억울하게 빼앗기는 것만 같아 만호는 피눈물을 흘렸
다. 그래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합의를 하지 않으면 당장 경찰에
끌려가야 할 처지가 되자, 어쩔 수 없이 만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돈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만호에게 돈을 받자마자, 침을 묻혀가며 하나하나
세었다.
그러더니 '맞네, 맞아.'라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일을 좋게 마무리 지어 준 것만 해도 감사할 터인데, 도리어 찾
아와 합의금을 요구하는 게 괘씸하기도 했지만, 미안한 기색이라
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만호는 허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밤을 새워 술을 마셨다. 아
마도 그날 처음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신 듯 햇다. 괜히 서럽고 또
괜히 억울했다.
그토록 피눈물을 쏟으며 모았던 돈이 이제 하나도 남지 않았다
고 생각하자, 세상만사 모든 사람들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만호는 하늘을 보며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밤하
늘에 떠 있는 초승달이 마치 만호의 마음인 양 만호의 모습을 흐리
게 내비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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