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의 옆에서 무너지는 집을 보며 형수도, 여동생도, 조카들도
흐느껴 울었다. 온 가족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슬픔에 그대로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울고 또 울었던가. 누군가 만호의 어깨를 툭툭 건
드렸다. 아주 작고 보드라운 바람처럼 어깨를 살포시 내려누르는
손길이었다. 만호는 울음을 그치고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작고
오동통한 손은 연신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만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리며 방실거리고 있었다.
얼굴을 들어보니 큰형의 막내아들이었다. 이제 막 걸음을 시작
한 만호의 제일 작은 조카였다.
큰형을 닮아 유난히 보조개가 깊이 파인 녀석이었다. 웃을 때마
다 까르르 거리는 웃음소리가 보조개에 머무는 듯, 말갛게 보였다.
녀석이 톡톡, 만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방실거렸다. 제 앞에서 무
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금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 길이 없는 천진
난만한 조카가 만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래도 어깨를 들썩
이며 우는 만호가 안 되고 불쌍했는지 위로를 해주는 거였다.
"삼초~온."
자기가 보기에도 만호가 아파보였는지 녀석은 연신 호호 입김을
날리며 만호의 어깨에 불어주었다. 상쾌한 바람이 한차례 그런 만
호와 막내조카 사이를 지나갔다. 그 바람에 쓸려 만호의 슬픔도
날아가는 것 같았다. 만호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랬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 나는 이 가족의 가장이다!"
시원한 바람이 만호의 가슴에도 불어왔다. 시원했다. 만호는 어
린 조카를 번쩍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삼촌, 안 아프데이."
"정말!"
어린 조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어린 아이의 미소는
천사의 미소와 같다. 만호는 어느새 조카의 미소를 보며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또한 넘어지면 또 일어나 달려야지 하는 자신감
이 생겼다.
'내는 오뚝이다! 여기서 쓰러질 수 없다! 누구든 내 앞길을 막아
봐라! 내가 주저앉나! 내는 우리 어무이 자식이고! 아홉 식구의 가
장이다! 내는 안 무너진다!!'
서서히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만호는 또 한 번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빨갛게 물이 드는 저녁노을 앞에서 갈길 잃은 만호네 가족은 그
렇게 서 있었다. 만호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어깨를 펴자, 하나둘
식구들이 일어나 태양 앞에 섰다. 아홉 명의 가족들이 그렇게 서
서히 세상을 향해 다시 서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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