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난리가 난 후 구청에 가자, 구청 사람들은 애초에 속이고
신고를 한 것이 잘못이지, 자기집 명의를 다른 사람 명의로 해서
돈이 지급된 것인데, 구청이 무슨 책임이 있겠느냐며 오히려 만호
네를 탓했다. 만호네를 비롯해 서너 집이 피해를 입었다. 어디 갈
곳도 없었고, 갈만한 돈도 없었다. 절망스러웠다.
만호는 당장 이 일을 어찌 처리할까 고민하기보다 차후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단무지 배달을 시작한 터라,
집을 마련할 돈도 없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온 가족이 함께
모여살 집은 구해야 했다. 만호가 이리저리 돈을 구하기 위해 종
종걸음을 칠 동안, 아버지는 옆집 아저씨를 잡아야 한다며 수소문
을 하고 다녔다.
어차피 경비 일은 그만둔 터여서 다로 일이 없었던 아버지는 아
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곤 하셨다. 때로는 이틀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러는 와중, 드디어 집이 철거되는 날이 다가왔다.
"흑흑... 이렇게 쫓겨나다이!"
"엄마, 아빠랑 지은 집이 무너져요. 흑흑..."
온 가족이 하나씩 짐 보따리를 든 채 산 위에서 천천히 잿더미
속에 가라앉는 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온 동네가 허물
어져 내렸다. 풀풀 먼지가 날리고, 그나마 몇 채 서 있던 집들도 순
차적으로 무너졌다. 만호는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슬
픔을 맛보았다. 만호는 저도 모르게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흑흑... 어무이! 행님!'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학교에 자퇴서를 내고 돌아오던 그 쓸쓸하던 운동장도
떠올랐다. 그래도 만호는 열심히 살아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겠노라 다짐했었다. 하드 통을
들고 들과 산으로 내달리던 까까머리 아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여
기저기 중국집을 전전하며 악착같이 살아오던 모습도 생각났다.
강진에서 도둑으로 몰리어 맨 몸으로 쫓겨났던 일, 패싸움에 휘말
려 어렵게 모은 돈을 탈탈 털어서 합의금에 냈던 일.
그 모든 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만호의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차례 파도
처럼 슬픔이 몰아쳤다. 큰형의 죽음이었다.
그것이 채 가시기도 전에 큰형님과 함께 쌓아올린 집이 한줌의 재
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살아갈 힘이, 앞으로 무엇으로 세상을 지탱하고 살아야 하나 싶
은 막막함이 만호의 가슴에 엄습했다. 무섭고 두렵고 자신이 없었
다. 만호는 고개를 숙인 채 오랫동안 소리 죽여 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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