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한동안 정신이 나가서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하나
도 귀에 안 들어오는 눈치였다. 먼 곳을 응시하는 아버지의 눈빛
에는 그 무엇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만호는 그 사내에게 달려들어
일단 아버지를 떼어 놓았다.
"우리 아부지헌티 무슨 짓입니꺼!"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만호를 쳐다보았다.
"뭐야! 네 놈도 한 패가? 난 돈을 뜯겼다! 그때 이 사람도 한 자
리에 있었다꼬!"
사내는 씩씩거리며 아버지에게 분풀이라도 할 참이었다. 만호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일이 어찌 되었건 이제는 모두 끝났다는 표
정이었다. 만호는 속이 뒤집어지고 화가 났지만 딱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저희도 피해잡니더! 그 사람이 우리 집 땅을 자기 땅이라 해놓
고 돈을 몽땅 챙겨가 내빼삐렸다 아임니꺼! 우리도 당장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 이말입니더!"
"그게 무슨 말이고! 그 사람말로는 실질적인 돈은 저 사람이 모
두 관리한다 캤다. 자기는 심부름만 한다꼬! 재산을 모두 그 사람
한테 돌려놓고 일을 마무리 짓자는 속셈 아이가?"
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더니 이내 엉엉 소리를 내어 우셨다. 아버지가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리며 우는 모습을 보자 만호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우리 아덜 집인데... 우리 큰아덜이 죽기 전에 피땀 흘려 번 돈
으로 지은 집인데... 엉엉... 이 멍청한 애비가... 다른 사람 말만
믿고... 엉엉... 우짜면 좋노... 우짜면 좋겠노... 엉엉."
아버지가 그렇게 우시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아니 그렇게
서슬프게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때 만호는 문득 깨달았다.
'아, 아버지도 이제 늙으셨구나. 많이 늙어셨어.'
왜 세삼스레 늙은 아버지의 야윈 어깨가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
지만, 큰일을 겪은 아버지가 더없이 불쌍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한 평생을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산 자신이 단 한번
만이라도 아버지 역할을 해보고 싶어 저지른 일이었다. 만호는 그
렇게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아버지를 들쳐 업었다. 두 팔로 감싸
업자, 한 품에 들어왔다.
만호는 그 순간, 모든 것을 체념했다. 더 이상 아버지를 원망하
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일단 집에 가서 좀 쉬이소. 지가 구청에 나가 알아볼
끼라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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