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는 자신을 전폭적으로 믿는 사장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또 한 번 사람을 믿어봐야 하나 하는 갈등을 일으켰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장님이 대뜸 만호에게 말했다.
"내는 나를 믿고 따라주는 사람을 절대 배신 안 한다. 내가 배신
을 하도 당해 봐가, 절대로 내부터 배신을 하거나 아프게 하지는
않을 끼라 굳게 맹세 안 했나. 만호 주방장, 우리 한 번 마음묵고
해보자. 나는 만호 주방장, 니만 믿는데이!"
누가 보면 근거 없는 믿음이라 하겠지만, 만호는 그런 사장에게
마음이 넘어갔다. 괜히 형 같고, 아버지 같았다. 푸근하게 만호를
품어주는 것이 비슷했고, 아직 일을 하지 않았어도 일단 사람을
믿어주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만호는 현재 있던 중국집에 그냥
남아 있기로 했다.
주인이 바뀌고 나서 중국집은 제법 부산 시내에서 알아주는 식
당으로 이름을 높여갔다. 사장님은 홀에 직원을 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손님을 안내하였다. 또한 신선한 재료에 대한 만호의 욕심을
꺾지 않았다. 자신도 재료가 좋아야 좋은 음식이 나온다며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나름대로 정보를 구해오기도 했다. 그런 면에
서는 만호와 사장님은 손발이 잘 맞았다. 오랜만에 만호는 처음
주방 일을 배울 때처럼 다시 신명이 나서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래, 이렇게 좋은 사람캉 일하몬, 언젠가 또 돈도 모을 거고
그러면 되지, 뭘 더 바라겠노.'
만호는 그렇게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잠을 자던 만호는 벌떡 일어났다.
아직 푸르른 여명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녁이었다. 꿈자리가 뒤
숭숭했다.
꿈속에서 만호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지가 예전에 함께 걸었
던 꽃길에 서서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런데 어머니 옆에 큰형이
서 있지 않은가. 만호는 놀란 얼굴로 어머니와 큰형을 번갈아 바
라보았다. 무언가 모르지만 슬픈 얼굴을 한 두 사람은 만호에게
손을 흔들었다.
큰형은 하얀 옷을 입은 채 어머니와 손을 잡고 있었다. 만호는
어머니와 큰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만호가 가까이 다
가가면 갈수록, 큰형과 어머니는 점점 멀어져 갔다. 어쩐지 서럽
고 슬펐다. 어머니와 큰형이 자신을 떼놓고 도망을 가는 것 같았
다. 어머니는 큰형의 손을 잡고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하염없이
걸어갔다. 만호는 어머니와 큰형을 따라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행님아! 와 혼자 가노! 나도 같이 가제이!"
만호는 소리쳐 형을 불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