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는 처음으로 남자로서 여자를 만나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
해 진지하게 말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친
구가, 그것도 여자친구가 사랑을 하며 살라는 이야기를 해주자,
만호는 그 말만으로도 세상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곧
자신의 처지가 떠올랐다.
"남의 집 귀한 딸자식을 데려다 우째 고생을 시키노. 내 같은 놈
만나면, 고생길이 훤한데." "사랑의 힘은 국경도 넘고, 운명도 바꾼다고 하더라. 사랑하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달라질 걸?" 만호는 영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두 눈이 잘 보이지
는 않지만 영은이는 참 맑았다. 만호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
다. 또한 불끈 힘이 솟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영은이가 눈이 잘 안보인다고 했을 때, 만호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힘을 내라, 괜찮
다고 위로를 한 자신이 너무도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누가 누구를 위로한단 말이고.'
이제 만호 자신이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나자, 그것이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암흑 속에 놓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으니, 스스로
가 참으로 한심스럽고 미련해 보였다. 그런 만호의 충고에 힘을
얻은 영은이가 오히려 대단해 보였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
는 영은이는 앞이 보이는 사람보다 훨씬 값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만호는 지그시 영은이를 바라보다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영은아. 사실은 내도 한쪽 눈이 안 보인다." 영은이가 만호쪽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다가 갑자기 놀란 얼굴
로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응? 뭐라고?" 만호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옛날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 보인다는 니한테 충고랍
시고 쓸 때 없는 말만 했다. 그란데 막상 내 눈이 안 보리고 보이,
세상이 다 끝난 거 만치로 어둡더라. 그제서야 내는 알았다. 내가
얼마나 쓸때 없는 말을 니한테 했는가를 말이다." 영은이가 놀라서 만호쪽으로 몸을 틀며 이야기를 했다.
"정말로, 눈이 안 보이니? 만호야?" "어. 꽤 됐다. 왼쪽 눈이 안 보인지가." "어쩌다가?" "모른다. 특별한 사고가 아이라, 어느 날부터 눈에 아지랑이가
피더이만, 시력이 점점 나빠지더라. 병원에 갔을 때는 치료시기를
놓쳤다 카더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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