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 아무 생각없이 가게 한 귀충이에 앉아 엽차잔을 만지
작거리는 만호에게 여동생이 다가와 툭 치며 물었다.
"뭐라도 먹여야 안 되나... 짜장면을 줘도 되나, 아이면 우유라
도..."
영은이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이 엽차면 충분해요. 그냥 꼭 한 번 오빠를 보고 싶
어서 온 거니까..."
만호는 그런 영은이를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많은 시간이 흘렀
지만 그 얼굴, 그 미소는 여전해 보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
다면, 그 눈도 아직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영은이는 아직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가게로 들어서는 영은이를 보자 만호의
가슴은 더없이 아파왔다. 자신도 한쪽 시력을 잃고 나니 그 갑갑
함과 번거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영은이가 만호의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학교에 갔는데, 우연히 예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만났어.
만호, 너에 대해 물어보니까 괴정시장에서 아주 유명한 짜장면가
게를 한다고..."
만호가 쑥스럽게 고개를 파묻었다.
"이거이 뭐가 유명하다꼬..."
"아냐. 아까 보니까 손님도 많고, 맛도 좋은가 보더라. 저 앞에
있는데, 사람들이 아주 맛이 좋다고 칭찬들도 하고 그러던데 뭘.
게다가 여전히 마음도 착하고..."
아마도 영은이는 시장에 돌아다니는 아이에게 공짜로 짜장면을
준다는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괜히 만호는 쑥스러웠다.
"그 아가 매일 아침 우리 가게 앞을 쓸어준다 아이가. 그래가 내
가 그거이 착하고 고마워가..."
"그래. 넌 옛날부터 마음이 따뜻했으니까..."
만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영은이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서 영
은이의 아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만호를 바라보았다.
"결... 혼... 한거가?"
만호의 그 말에 영은이가 옆에 앉은 아이의 머리를 만지며 밝게
웃었다.
"응. 내 눈을 치료해주던 의사선생님이랑 했어. 아주 착한 사람
이야. 그런데 만호 너는, 결혼했니?"
만호가 손을 흔들며 웃었다.
"무, 무슨... 내 주제에 무슨 결혼이고! 정신이 없어가, 염두도
몬 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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