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입에 한가득 검은 양념이 발라지는 것도 모른 채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점심장사를 위해 면발을 치대던 만호가
씨익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한 그릇 더 묵을래?"
아이가 만호를 바라보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장사 시작은 니가 해라. 자, 또 묵으라."
아이의 입으로 쪽쪽 빨려 올라가는 면발을 보며 만호는 참으로
흐믓햇다. 가게 앞에서 아이가 그렇게 맛있게 먹어준 덕분인지,
소스냄새 때문인지, 주방을 공개하면서부터 만호네 짜장면가게는
장사가 잘 되었다. 어떤 손님은 지나가다 아이가 짜장면 먹는 것
을 보고는 침을 흘리며 들어오기도 했다.
"아이고! 고놈 자슥, 맛나게도 먹네. 내가 그냥 갈 수가 있나!"
"영업시간이 되기도 전에 하나 둘, 손님들이 들어왔다.
시장에서 터를 잡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괴정
시장 안의 남매 짜장면가게는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아주 대박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일한 대가로는 충분할 만큼 만호의 짜장면
가게는 잘 되어가고 있었다.
"오빠야. 오늘만큼 장사가 되면 우리 금방 부자될끼다. 그제?"
여동생은 점심장사를 마친 후 장부를 펼쳐 놓고 활짝 웃었다. 만
호는 새벽부터 점심이 끝나갈 무렵까지 제대로 한 번 펴보지도 못
한 허리를 펴며 여동생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만족감이었다. 만호는 시원한 냉수 한 사발
을 들이켰다. 힘들게 일한 후에 오는 달콤한 시원함이었다.
"만호야!!"
만호가 물을 한 잔 다 마시고 내려놓으려 할 때 누군가가 만호를
불렀다. 그리고 만호의 눈에 무언가 희미하게 들어오는 것이 있었
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만호는 시원한 냉수를 마실 때
처럼 꿀꺽 침을 삼켰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얼굴만큼은 또렷하
게 남아 있는 듯 했다. 그 미소 역시 그대로였다. 만호는 눈앞에
꿈결처럼 서 있는 여자를 한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바로, 초등학교 때 헤어진 만호의 첫사랑, 영은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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