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벌이가 일정치 않으니, 어머니는 항상 만약을 위해 저
축을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실제로도 어머니는 저축을 열심히 하
셨다. 물론 나중에 병이 들었을 때 병원비며 약값으로 모두 들어
가 버렸지만, 그 돈이라도 없었다면 아마 밥 먹고 살아 가지도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어쩌면 그 교육이 만호나 여동생이
돈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는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여동생은 만호가 용돈을 줄 때마다 고맙다고 장난스럽게 인사를
꾸벅하며 환호를 지르곤 했다.
"고맙습니더! 사장님!!"
만호는 여동생의 사장님 소리가 제일 듣기 좋았다. 어쩐지 정말
사장이 된 듯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직원이라고는 달랑 둘밖에 없
는 작은 가게에서 사장이면 뭐하고 직원이면 뭐하겠냐마는, 어쩐
지 사장 소리를 들으면 책임감도 들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
각도 들었다.
단무지배달은 생각보다 훨씬 잘 되었다. 운이 좋았는지 만호가
사는 곳에는 중국집에 단무지를 배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동네부터 거래처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하단동,
장림동, 신평까지 날이 갈수록 단골이 늘어만 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오나 만호의 단무지 자전거는 멈
추지 않았다. 오전이든 오후든 가져다 달라는 시간에는 정확하게
단무지를 배달했다.
때로는 장사가 안 되어서 단무지를 받지 않는 곳도 있었지만 그
럴 때에도 만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의 노하우를
살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중국집 사장과 함께 논의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배달을 갈 때면, 중국집 사장님은 만호를
알아보고 새로 첨가한 양념에 대해 물어오기도 했고, 영업 아이디
어를 알려주며 반응를 살피기도 했다. 만호는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그래도 매번 쉽지만은 않았다. 신평에 있는 중국집에 배달을 갈
때에는 힘든 고개를 넘어야 했다. 물건을 다 팔고 돌아올 때에 그
높은 고개에서 내리막으로 향하는 길로 자전거를 내달릴 때면 상
쾌한 바람이 만호의 머리카락을 휘감았다. 그런 상쾌한 바람을 맞
을 때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했다.
그러나 때로는 장사가 안 되어 물건이 남아서 낑낑거리며 가지
고 갔던 단무지를 고스란히 되가지고 내려올 때는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더욱이나 신평에 있는 고개는 가파른 고개여서 늘
올라갈 때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기에 내려올 때도 역시 힘들게
내려와야 했으므로 두 배로 힘이 들었다.
그래도 단무지장사는 꽤나 단골이 많았다. 어쩌면 그건 하루에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부르면 달려가 한 봉지의 단무지라도 성실하
게 배달해 주는 만호 때문인지도 몰랐다. 만호의 자전거는 쉴 새
없이 달렸다. 그때문인지, 자전거는 6개월만 지나면 완전히 고물
이 다되어서 새 것으로 바꾸어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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