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오겠습니더!"
만호가 큰 소리로 외치며 집을 나섰다. 조카들이 손을 흔들어 주
었다. 형수도 나와서 그런 만호에게 인사를 했다.
집을 빼앗기고 나서 만호네는 옆동네에 있는 아주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비록 아홉 식구가 살기에는 작고 초라한 곳이었지만
온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 산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
각했다. 다행히 중국집 사장님이 급한 돈은 빌려줘서 그래도 자그
마한 한 채를 구할 수 있었다.
만호는 집의 철거문제로 한동안 신경을 쓰지 못했던 단무지배달
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더 이상 절망만 하면서 지낼 여유가
없었다.
당장 먹을 것이 필요했고, 돈을 모아 온 가족이 제대로 살 수 있
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만호는 자전거의 패달을 힘차
게 밟았다. 새벽바람을 가르며 만호의 단무지가 달려갔다. 단무지
배달사업에 여동생도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내도 도울게. 놀면 뭐하겠노! 월급 좀 받고 취직하는 것 보다는
둘이서 힘을 합쳐 일하는 게 더 나을 끼다!"
하나보다는 둘이 훨씬 나았다. 게다가 제법 손끝이 야무진 동생
이어서 하나를 알려주면 두 개를 척척 알아서 하곤 했다. 만호와
여동생은 그런 면에서 손발이 척척 맞는 환상의 복식조 같았다.
만호는 가끔 여동생이 너무 똑 소리 나게 일을 할 때면 기분이 좋
아 여동생에게 말하곤 했다.
"니는 혼자서 우째 그리 일을 잘하노! 니는 중국집 보조 요리사
를 해도 잘 할끼다!"
"내가 원래 능력이 많다 오빠야! 나 월급 줄끼제!"
가족끼리 일하다 보니 따로 월급은 없었다. 그냥 버는 대로 일부
는 저축을 하고 또 일부는 생활비로 들어갔다. 그러나 만호는 그
중에 얼마를 착실하게 여동생 앞으로 적금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적지만 용돈을 하라며 돈을 주기도 했다.
다른 여자애들 같으면 화장품이나 옷에 욕심도 많을 텐데,
만호의 동생은 그런 것도 없어 보였다. 그냥 시장에서 파는 싸구
려 옷을 입었고, 신발도 한 번 사면 몇 달이고 신고 다녔다. 멋이
라고는 아예 모르는 애 같았다. 그건 만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래도 가끔 만호는 여동생에게 용돈을 주며 나가서 옷도 좀 사 입고,
친구도 만나라고 재촉했다.
"니는 우째 여자아가 되어가 그라고 다니노! 화장도 좀하고 옷
도 좀 예쁘게 입고 다니라!"
"치, 옷만 번지르르 하게 입으면 예쁘나? 마음이 예뻐야지!"
여동생은 만호가 용돈을 주면 잔소리를 할 때마다 그냥 웃고 말
았다. 도대체 용돈을 주면 무엇을 하나 내심 관심을 가지고 기켜
보았지만 특별히 물건을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만호 몰
래 적금을 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돈을 주면 일단 저축부
터 하고 보는 습성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교육 탓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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