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는 가방하나만 달랑 들고, 자신이 처음 부산에서
내려올 때 가져왔던 비상금마저 빼앗기고 빈털터리가 되어
쫓겨났다.
그야말로 몇 달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돈보다도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아픔이 더욱 컸다. 허탈
했다. 자신을 도우러 온 사람에게 도둑 누명까지 씌운 사람을 믿
고 함께 일할 수는 없었다. 만호는 미련 없이 그날 밤, 부산으로
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만호는 화를 삭이고 또 삭였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이거밖에 안 되는데 누굴 원망하겠노.'
그러나 원망과 한탄도 잠시, 부산으로 돌아갈 것이 문제였다.
가진 돈은 없었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강진의 주방장 식구들 밖
에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만호는 정류장에
서 멀지 않은 시장주변을 맴돌았다. 급한 밥값은 되었지만 차비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만호는 일단 밥이나 먹고 생각
하자며 근처의 작은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시장 주변의 국밥집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많았다. 주인 아주머
니 혼자서 식당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여간 바쁜것이 아니었다. 혼
자서 국밥을 퍼서, 나르고, 치우는 일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일손이었다. 어떻게 부산집으로 돌아갈까 고민에 빠져있었지만
정신없이 일하는 국밥집 아주머니를 보자 그마저도 까맣게 잊어
버렸다. 습관처럼 만호는 그릇들을 챙겨 부엌으로 날랐다.
자기가 먹은 국밥 그릇과 함께 옆 자리에 있던 국밥 그릇까지
챙겨들고 부엌으로 옮기고, 상을 깨끗하게 닦았다.
자리를 치우고 나면 금방 또 손님이 들어왔다.
"아따 총각, 그라나도 되는디..."
주인 아주머니는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당장 급한 일손
때문인지, 그만하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만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그렇게 아주머니를 도와주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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