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점심을 먹고 두 사람은 용두산 공원을 걸었다. 만호 옆에
착 붙어 걷는 아가씨의 옷깃이 슬쩍슬쩍 만호의 팔을 스쳤다.
손을 잡은 것도, 그렇다고 어깨동무를 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만
호의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아가씨가 살포시 웃을 때는 숨이 멎
는 듯했다. 만호는 짐짓 태연한 척하며 되도록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가슴은 더욱 더 심하게 방망이질을
쳤고, 얼굴은 빨개졌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바로 그때 두 사람 옆으로 오토바이 한대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만호는 본능적으로 아가씨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얼떨결에
만호는 아가씨를 안은 꼴이 되어버렸다. 오토바이가 지나가자, 아
가씨가 부끄럽다는 듯 만호에게서 떨어졌다. 그제야 만호 역시 수
줍게 고개를 돌려 헛기침을 했다.
"공원에서 무신 오토바이를 저리 급하게 타노!'
만호는 괜히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향해 화를 내듯 투덜거렸다.
옆에서 보니 아가씨의 볼이 발갛게 상기된 것이 보였다.
만호는 짐짓 모른 척하며 성큼성큼 아가씨를 앞질러 공원 길을
올라갔다. 무슨 등산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만호는 저만치 앞서 걸
으며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잠시 전에 살포시 안겨오던 아가씨의 심장 소리가 아직도 만호
의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용두산공원을
거닐었다.
"만, 만호씨! 같이 가입시더!"
저만치에서 아가씨가 숨이 차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만호를
불러 세웠다.
그러자 만호는 아가씨를 돌아보았다. 부끄럽고 수줍은 만호는
저도 모르게 너무 빨리 걸었던 모양이었다.
발갛게 상기된 볼을 한 채로 아가씨가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가을 낙엽과 묘하게 어우러져 더욱 더 아름답게 보였다. 간신히
숨을 고른 아가씨는 입을 삐죽이며 만호를 흘겨보며 말했다.
"지하고 함께 걷는 게 그리 불편합니꺼? 와 그리 빨리 가는 건데
예?"
만호는 그런 아가씨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얼굴이
벌게져서 손을 흔들며,
"아, 아니라예! 불편은....."
그게 아니라고 사실은 너무 떨려서 그렇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
만, 입술은 서로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말도 못
한 채 당황스럽게 바라보는 만호의 표정이 우스웠는지 아가씨가
어느새 활짝 웃으며 만호를 바라보았다.
"농담이라예. 가입시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