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나 싶으네예. 제가 사람을 잘
보는 것 같지도 않고, 제 맘처럼 사람들이 그리 생각해 주는 것 같
지도 않고..."
"그렇다고 언제까정 이리 술만 푸고 있을 끼가? 식당에는 가족
들이 다 나와 일을 하면서 니 나올 때만 눈 빠지게 기다리는데!"
"휴!"
그랬다. 만호가 빠진 식당에는 아내와 여동생을 비롯해 형수와
조카까지 나와 거들고 있었다. 그렇게 가족들이 모두 나와 힘을
보태고 있는 걸 알면서도 선뜻 만호는 식당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니 나가기 싫은 것이 솔직한 마음일 터였다. 그동안 먹고 살기
위해 일은 한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만호가 만든 짜장면을 맛나게 먹고 또 때로는 자신이
힘들게 번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과 웃으며 지내는 것이 만호는 무엇보다 좋았다. 그런데 그런 사
람들이 이제는 무섭게 느껴지니 일을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만
호의 가슴에 가득 차올랐다. 이런 마음으로 나가서 일을 한들 제
대로 된 음식을 만들기나 할 것이며 신명은 나겠는가 싶어 하루
이틀 식구들이 고생하는 걸 알면서도 만호는 머뭇거렸다.
만호의 아내 역시 만호에게 재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만호가
더없이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러는 것
도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만호는 처음으로 아내의 무릎에 얼
굴을 파묻고 울었다. 그동안 직원들이 그렇게 하는 것도 모르고
지냈다는 것에도 화가 났고. 그렇게 자신이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
이 몰래 도망을 쳤다는 것에도 서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여태껏 일궈온 일터를 망가뜨린 것에 분노했다. 그런 복합적인 마
음이 아내의 얼굴을 보자 터져 버린 것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그렇게 울어 본 것이 언제인가 싶게
만호는 울었다. 아내는 말없이 만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
리고 맘껏 쉬고 싶을 때까지 쉬라며 만호를 위로해 주었다. 몸이
아픈 것은 약을 먹으면 낫겠지만 마음이 다친 것은 꽤나 시일이
걸린다는 걸 아내는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만호는 며칠째
집에 홀로 남아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나가기가 힘든 아내는 작은 아이만
업고 식당으로 나갔다. 큰 아이와 함께 만호는 늦게 일어나 부스
스 부엌으로 향했다. 옆에서 함께 뒹굴던 큰 녀석이 만호의 꽁무
니에 따라 붙었다. 어버버거리는 발음으로 녀석은 만호에게 배고
프다며 징징댔다. 만호는 어린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눈을
맞추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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