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 역시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원래 주방장이 바뀌면
재료상이 바뀌는 곳이 많기는 했다. 그러나 만호는 처음 괴정시장
에서 짜장면을 팔 때부터 이용하던 곳이라 누구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채소가게 아저씨는 만호를 많이 도와준 분인데, 주방장의
뜻에 따라 쉽게 재료들을 바꾼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주방장의 의견을 아예 무시한 채 사장 맘대로 재료상
을 정한다면 그 역시 주방장의 의견을 무시하는 결과가 되어 고민
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만호는 이 문제 역시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결국 그 날의 술자리에서는 그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이 끝내야 했다. 기분 좋게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나 해야지
했던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아주 딱딱하고 어려운 자리가 되어 버
린 꼴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만호는 아내에게 이 문제를 상
의했다. 아내 역시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며 신중하게 생각하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지배인과 주방장이 너무 죽이 잘 맞는 것도 좋기만
한 건 아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월급인상문제는 만호 역시
생각해오던 바여서 어떻게든 결정이 날 듯 싶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재료상이었다. 갑자기 잘 해오던 곳을 끊어내고 새로운 곳
을 찾는다는 것도 못할 짓이거니와, 아무리 주방장이 아는 사람들
이라고 해도 그 재료를 믿고 맡긴다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만호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한참을 끙끙대고 있자
아내가 보다 못해 결정을 내려주었다.
"일단 다른 재료들은 두고 밀가루랑 단무지만 주방장한테 맡기
소. 밀가루야 아무데서나 데 먹어도 문제될 거 없고, 단무지도 당
신이 장사를 해봤으니까네, 누구보다 가격이나 질을 알 수 있다
아임니꺼! 그러니까네 주방장 체면을 깎지 않을 수도 있고, 재료
를 선별해서 고를 수도 있고, 어떻습니꺼?"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소와 고
기 등은 일단 바꿀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질 좋은 재료일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오랫동안 유지한 사람들이라 정리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만호가 어려울 때 형편을 봐준 사람들에게 그런 식의 대
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머지 재료들이야 사실 만호가 가끔씩만
체크해도 충분히 가능할 듯싶었다. 아주 주방장의 의견을 무시하
는 것도 아니어서 그 정도면 타협이 될 듯도 싶었다. 월급 문제 역
시 아내가 말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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