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호네 식구들이 카페에 모여 앉았다. 그 자리에 용
이도 있었다. 만호의 아내가 떠나가는 용이에게 대접을 한번 해주
고 싶다고 하여 마련된 자리였다.
통기타의 선율이 은은하게 울리는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식사를 했다. 워낙에 만호네 식구들이
대식구인지라 테이블이 가득 찼다. 용이는 마치 자신의 식구들에
게 대하듯 스스럼없이 여기저기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술잔을 부
딪쳤다. 어린 꼬맹이 손님에게는 주스를 내밀며 건배를 했다. 누
가 봐도 용이는 참 사교성이 뛰어난 친구였다.
카페의 은은한 불빛과 창 밖의 달빛이 묘하게 어우러진 밤이었
다. 그들 사이사이로 통기타의 선율이 흘러 다녔다.
문득 만호는 그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다.
살면서 맛보기 어려운 몇 장면처럼 오래도록 기억될 풍경 같았다.
카운터 쪽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만호에게 아내가 다가왔다.
더불어 몇 잔의 술을 마신 때문인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내
는 수줍게 만호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다. 만호도 오늘은 어느
정도 술을 마셨기 때문에 취기가 빨리 올라오는 것 같았다. 순간
희미해져 오는 눈을 비비며 아내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러나 여전
히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선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이리 눈이 흐릿하게 보이노.'
한동안 너무 무리를 한 탓인가, 금방 술에 취한 탓인가 눈앞의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듯하여 자꾸만 도리질을 쳤다.세게
머리를 흔들고 눈을 비비며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려 해도, 어느새
만호의 눈앞은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서야 만호는 어떤
두려움에 휩싸여 들고 있던 잔을 놓치고 말았다.
"여, 여보!"
아내가 놀라 만호를 붙잡았다. 만호는 멍하니 그대로 의자에 주
저 앉았다.
'눈이, 한 쪽 눈마저.... 안 보이기 시작하는 건가!"
만호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싸여 눈을 비비고 또 비비며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내 눈! 내 눈! 아! 여보, 내 눈이 잘 안 보이네!"
순간 만호는 지난 번에 한 쪽 눈을 실명한 아픈 기억이 주마등처
럼 스쳐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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