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문이 열리며 키가 크고 하얀 얼굴의 아가씨가 쟁반에 물을
받쳐 들고 방으로 들어섰다. 살며시 앉으며 물을 내려놓는 그 모
습을 만호는 힐끔 쳐다보았다. 아가씨도 볼이 발그스레해져서 만
호를 쳐다보다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다. 만호는 저도 모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가씨였다. 만호의 가
슴이 또다시 방망이질을 쳤다. 조금 전 간신히 진정이 되었는데,
아가씨를 보자 또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참하게 생겼데이. 이쁘네.'
만호는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키도 크고 얼굴도 고운데다, 눈이
특히나 예쁜 아가씨였다. 아가씨는 물을 내려놓고는 부끄럽다는
듯 밖으로 나갔다. 만호는 자신도 모르게 벌겋게 달아오른 볼을
숨기느라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밥만 입이 미어지게 밀어 넣었다.
그런 만호가 옆으로 살피던 옷 가게 아주머니가 농담을 걸었다.
"그래 선 보는 걸 싫다고 카드만, 아가씨는 보니 좋은 갑제? 만호
니, 얼굴이 빨게졌네."
"많이 먹으이소. 밥 잘 먹으야 일도 잘하는 기지."
아가씨의 어머니가 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옷 가게 아주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하모. 만호는 일만큼은 정말 열심히 잘한다 아임니꺼! 제 식구
굶기는 일은 절대로 안 할만큼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을 합
니더. 무엇 보다도 다른 사람보다 제 안식구 속은 안 썩힐 낍니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정신이 없는
식사가 끝나고 나자 만호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아가씨의 부모님
앞에 앉았다. 아가씨의 어머니는 일단 밥을 맛나게 잘 먹는 만호
가 흡족한 모양이었지만, 아가씨의 아버지는 만호가 그다지 탐탁
지 않게 여기시는 것 같았다.
"자기 가게를 가지고 있으믄 머하겠노. 벌어 먹여야 하는 식구가
아홉이라는데. 시집가서 고생되몬, 내딸 몬 보낸다."
아가씨의 아버지 입장에서라면 당연히 반대할 수도 있는 일이지
만 그 당시 만호로서는 서럽고 서운하기까지 했다. 훗날, 장인이
되었지만, 그때 만호는 할 말이 없어 고개만 푹 숙였다.
"그라고 실내에서 와 색안경은 쓰고 있노?"
장인이 되실 분은 만호를 이리저리 살피며 자꾸만 물어보았다.
아마도 색안경을 쓰고 밥을 먹는 만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말에 옆에서 거들던 옷 가게 아주머니가 급하게
나서며 말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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