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한마디 던지고는, 만호는 더욱 더 힘을 내서 밥을 퍼
먹었다. 습관적으로 먹는 밥처럼 아주 익숙하게 숟가락질을 하는
만호를 아내의 안쓰러운 시선이 따르고 있었다. 아내는 만호가 짐
짓 용감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었다. 앞이 안 보이는 그 심정이야 만호 자신이 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슬프고 애틋한 것이었다.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하
는 활동성이 많은 만호였다.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두 눈을 잃
고 아내의 수발을 받으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제일 답답할 것이
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누구보다 만호가 제일 힘들어 할 부분이
란 것을 알기에 아내는 참고 또 참았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만호
스스로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혼자서 밥을 먹겠다고 하자 아내는목
이 메어왔던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만호는 퇴원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만호는 보이지는 않지만 집안의 푸근한 분위기에
감회가 젖었다. 이 얼마나 지키고 싶었던, 가지고 싶었던 가족의
냄새였던가. 만호가 어릴 적 어머니와 가족들에게서 느꼈던 그 냄
새가 느껴지는 듯했다.
초등학교 시절, 눈이 보이지 않는 영은이와 함께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영은이는 만호에게 바람의 냄새와 공기를 맘껏 느껴보
라며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했었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지만 그때, 자연이 주는 상쾌한 내음을 온
몸으로 느꼈었다. 지금도 그랬다. 평상시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
던 가족의 온기가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보니 그 무엇보다 그리워
했던 향기였다는 걸 만호는 온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울타리가 되어 따스하게 품어주고자 했는데, 그래서 그
렇게 열심히 밤낮으로 일을 했던 것이었는데, 정작 자신은 그 따
스함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구나 싶어지자, 어쩐지 서글픔이
밀려드는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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