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온갖 것들이 제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어 복잡하지 않
은교? 우째 그리 후딱 기억을 해내는교? 매일 쓰는 내도 잘 모르
는데."
"당신은 두 눈으로 더 많은 걸 챙긴다 아이가. 내는 앞이 안 비
니까네 머리로 생각을 해야지. 내가 남들보단 머리가 쪼매 좋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라."
어느 정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초연해지는 만호의 모습이 만호
의 아내나 아이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만호의 장애를 장애라 여기지 않았다. 예와 다름없이
만호를 대했고 자신들이 아버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는
듯도 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라는 것을 만호는 알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야 도울 수 있지만 그것이 일상이 될 때에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것이었다. 아이들도 사람인지라 그 마음을 서운해 한다면
그건 욕심이라고 만호는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살아
보려 노력하는 와중에도 불쑥불쑥 가슴에 사무치는 슬픔이 있었
다. 그것은 바로 가족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고운 얼굴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아이
들을 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만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슬픔에 만호는 이를 악물어야 할 정도였다.
"만호야..."
그때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만호의 이름을 불렀다.
"만호야....." "어무이....."
"사나이가 그리 눈물이 많아 쓰겠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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