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몸이 아파서 온 것이 아니라며 한 시간만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만호와 수다를 떠는
사람도 있었다. 때로는 화병으로 지압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편 때문에, 시어머니 때문에, 자식 때문에 남모를 고통으로 몸
은 멀쩡하지만 점차 마음이 망가지는 사람들이 지압원을 찾아와
만호 앞에서 울고 웃었다.
만호는 그런 사람들에게 손끝 매운 지압을 해주는 대신 손수건
을 내밀었다. 어떤 때는 앞이 안 보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
을 때도 있었다. 만호가 살아온 이력을 조용히 듣고 있던 손님들
중에는 지압을 받다 말고 벌떡 일어나 자기가 만호의 어깨를 주물
러 주며 흐느껴 울 때도 있었다.
"아이고마! 지압원 원장님이 받아야 겠네예. 내보다 더 피곤한
인생을 살아오셨다 아임니꺼! 내 까짓 것을 가지고 뭐라 피곤하다
꼬 여기 와가 지압을 받는교. 택도 엄써예."
그만큼 만호는 사람들과 친밀해져 갔다. 때로는 사람들의 안
타까운 사연을 듣다 보면 자신의 인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
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반성을 할 때도 많았다.
만호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으러 왔다가
도리어 만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훌쩍이며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호는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며 열심히 살아오다 눈이 안 보이게
된 만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월간지의 기자가 만호를 찾아와 취재를 요청할 정도였다. 기자
는 우연히 목욕탕에 갔다가 만호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기사에 싣
고 싶으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만호는 자신의 인생이 뭐
가 그리 대단하다고 취재까지 하느냐며 한사코 거부했다. 그러나
한 번 취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백은미 기자는 쉽게 돌아가지 않
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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