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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청도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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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4:26 조회1,7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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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정동 중국집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내던 종업원이 있었다. 그의 고향이 청도였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일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머리도 식힐 겸 나에게 청도에 함께 가자고 했다. 나도 다른 곳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던 터라 양정동을 그만 두고 흔쾌히 그를 따라 청도로 갔다. 그곳에서 그 친구의 소개로 덕성원이라는 중국집 일을 도와주면서 지내게 되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무척 좋은 분이셨다. 동생처럼 신경도 써주고 간혹 빨래도 해주고 해서 많이 친하게 되었다. 그래서 누나 동생을 하기로 하였다.

   한번은 이가 무척 아팠다. 충치가 생긴 모양이었다. 아프다고 하니 누나가 나를 데리고 청도극장 앞으로 갔는데 무허가 치료사였다.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는데 그 돌팔이가 입을 벌리라 했다. 그가 위쪽 잇몸에 주사를 대고 찔렀다. 어찌나 아프던지.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 또 입을 벌리라 했다. 이번에는 펜치를 입에 넣고는 아픈 이를 집어 흔들면서 힘껏 뽑았다. 피가 많이 났고 말할 수 없이 아팠다. 한참 있으니 겨우 피가 멎었다. 그가 뽑은 이를 내게 보여주었다. 기가 막혔다. 이는 거의 멀쩡했다. 충치가 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석고를 때워도 충분할 정도였다. 그렇게 뽑힌 이는 아직도 새로 해 넣지 못하고 산다.

 

   누나와 나는 일을 마치고 난 뒤 이따금씩 막걸리를 한 잔씩 했는데 청도막걸리는 정말 맛있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우리는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루는 식당이 쉬는 날이었다. 때는 가을이었는데 가게 사람들 모두 청도에 있는 냇가로 피라미를 낚으러 가기로 했다. 나는 막걸리 한 말을 지고, 다른 사람들은 낚시에 필요한 물건을 챙겨가지고 갔다. 자리를 잡고 낚시를 했고 금방 잡은 피라미들은 그 자리에서 튀김하여 막걸리하고 먹었다. 그런데 술잔이 모자랐다. 할 수 없이 고무신을 벗어 깨끗이 씻은 다음 고무신으로 막걸리 잔을 대신 했다. 지금도 그때 먹었던 막걸리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해질 무렵까지 놀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주막에 들러 한 잔하다 보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누나는 자기 식구들보다도 나에게 더 신경을 써주셨다. 나는 누나가 어머니처럼 느껴졌다. 누나의 도움을 많이 받은 터라 나중에 부산으로 내려온 후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고 이따금씩 여행 삼아 청도에 가서 누나를 만나곤 했다. 내가 결혼한 후에는 아내와 함께 가서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 후로는 사느라 바쁘다보니 찾아가지 못했다. 사실 실명하고 힘든 때에 많이 보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이제는 가고 싶어도 어디에 사는지 찾을 수도 없거니와 살아 계신지도 모르니 답답할 뿐이다. 그리운 청도, 언제 다시 한 번 갈 수 있으려나. 누님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인사를 드리고 싶다.

 

  누님, 이 못난 동생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누님을 어머니같이 편안한 감정으로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피를 나눈 남매는 아니지만 정말 누님을 좋아했습니다. 누님은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시고 큰 손으로 못난 동생의 허물을 감싸주셨습니다. 살아만 계신다면 만날 날이 있겠지요. 누님, 행복하시고 건강하게 사시면 또 좋은 날도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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