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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분식집에서 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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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4:33 조회1,8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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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정시장 근처에 지금은 나이트클럽이나 식당들이 들어섰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는 포도밭이 있었고 시멘트블록을 만드는 공장도 있었다. 블록들이 공터에 쌓여있어서 낮에는 아이들이 놀기 좋았고 밤에는 으슥해서 청소년들이 담배를 숨어서 담배를 핀다거나 젊은 남녀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였고 식당이나 먹을거리 장사들이 계속 생겨났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지면 나도 매일 그곳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곳에 분식집이 나란히 두 군데가 있었는데 하루는 한 분식집의 주인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자신의 가게에서 일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였다. 나는 특별히 하는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배고픔이라도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에 그곳에서 일하기로 하였다.

 

  요즘같이 시설이 좋지는 않았으나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 당시 분식집은 만남의 장소로서 서민들이 큰 부담 없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가게에서 내가 만든 것은 흔히들 말하는 붕어빵이었다. 요즘은 기계에 6개의 틀이 달려 있지만 그때는 12개의 붕어빵을 한 번에 구울 수 있었다. 나는 붕어빵을 매일 수백 개씩 구워냈다. 힘도 들었지만 사람들이 내가 구운 붕어빵을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았다. 그때 먹던 붕어빵이 생각나서 요즘에도 가끔씩 사먹어 보는데 예전의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배고프고 고생스러울 때 먹었던 거라 아마도 더 특별하게 기억된 것이겠지만 가게마다 주인의 손맛에 따라 재료를 특색 있게 만들어 팔던 그때와 달리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반죽이나 팥으로 굽다보니 어느 집이나 맛이 똑같을 수밖에 없다.

 

  주인아저씨는 남해 사람인데 좋은 분이셨다. 아저씨는 손자장면을 만들었고 나는 단팥죽,  찹쌀도넛 등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하였다. 분식집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다보니 나 스스로도 웬만한 것은 만들어 파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손으로 뽑는 면이 신기하기도 하고 맛도 있어서 관심을 가지게 되어 배우기로 하였다. 6개월쯤 하다 보니 제법 면이 나왔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나에게 가게를 맡겨두고 밖으로 나가 다른 일들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면 뽑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날씨가 더우면 반죽이 평소보다 많이 부풀어 오르는데 경험이 많지 않은 내가 하면 면이 잘 뽑아지지 않았다. 테이블에 앉은 손님은 자장면이 나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고 면은 잘 나오지 않아 진땀만 흘리는 날이 종종 있었다. 하루는 한 남자가 딸아이를 데리고 분식집으로 들어섰다. 분식집 앞을 지나가다가 면을 뽑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나를 보고 들어온 것 같았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면이 잘 나오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난감한 마음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자신이 한 번 해봐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기뻐서 슬쩍 자리를 비켜드렸다. 어떻게 해서라도 주문받은 자장면을 손님께 드리는 게 우선이었다. 그는 내가 하던 방식보다 능숙하게 면을 뽑았는데 손놀림이 대단했다.

 

  그분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손님에게 맛있는 자장면을 만들어 내놓을 수 있었다. 키가 작달막한 그는 괴정초등학교 뒤 새리골에 사는 정 씨라고 했다. 정 씨는 중화요리 집 주방장인데; 쉬는 날 딸을 데리고 놀러 나온 길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 가끔 오셔서 이것저것 많은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셨다. 정 씨 아저씨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번은 시내 큰 중화요리 집에서 일할 생각이 없냐고 정 씨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그러지 않아도 작은 분식집보다는 더 좋은 일자리가 없을까 고심하던 중이었고 면 뽑는 기술도 좀 익혔으니 시내의 큰 중국집에서 일하고 싶었다. 웬만큼 잘하지 않으면 봉급을 많이 받을 수는 없었지만 배고픈 시절이던 그때는 숙식만 해결해주어도 일할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마침 정 씨 아저씨가 제의를 해주니 반가웠다. 그러나 분식집을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주인아저씨가 보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춥고 배고플 때 도움을 주신 분이라 많이 망설여졌지만 큰 중국집에서 요리를 배워보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그래도 결정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은혜도 갚지 못한 채 말없이 그곳을 나왔다. 그렇게 나는 시내 중국집에 취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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