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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용호동 나환자촌 용호반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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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4:24 조회2,6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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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와서도 병원 치료를 계속했으나 눈앞은 더욱 희미해졌다. 그래도 일을 쉴 수는 없었다. 빠듯한 살림에 병원비를 부담하는 것이 벅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딱히 마땅한 자리가 없어 고심하고 있던 중에 하루는 전에 일하던 순화루에 놀러갔다. 그때 용호반점 주방장이 찾아와서 혹시 라면장을 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나를 소개해주었다. 그 사람은 이것저것 나에게 물어보더니 자신의 가게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용호반점에서 라면장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주방일을 하는 사람들은 전국 어디에 가도 숙식이 해결된다. 일할 곳이 있으면 그날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그러니 떠돌이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전국 각 지역을 넘나들며 일을 얻어 다니기도 했다. 새로이 일하게 된 용호반점 주인은 용호동 나환자촌에서 나환자를 돌보는 의사이기도 했다.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내 말을 들은 주인은 내 증상을 듣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러나 별 효과는 없었다. 대신 주인과 주방장은 내가 남포동이나 대신동으로 오후에 치료를 다닐 수 있도록 양해를 해주었다.

 

  수개월이 가도 증상에는 차도가 없었다. 한쪽 눈으로 보는 것도 익숙해져서 그런대로 불편하진 않았으나 마음은 초조해지고 있었다. 일을 하던 중에 라디오를 듣다가 여수에 있는 안과 선생님이 유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일요일에 첫차를 타고 찾아간 적도 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나를 진찰한 후에 말했다.

  “너무 늦게 왔네요.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희망을 안고 달려왔는데 절망스러워서 의자에서 일어설 힘도 없었다. 더 겁이 났던 것은 오른쪽 시력마저도 실명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쪽 눈만이라도 시력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여수까지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3 년이 지난 뒤 이미 실명한 눈에 백내장이 왔다. 여수의 안과에 전화로 문의를 했는데 이미 보이지 않는 눈이니 그냥 두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남 보기에 좋지 않을 수 있으니 원하면 수술을 하라고 했다. 나는 여수로 가서 수술을 하고 당일 부산으로 돌아왔다. 통증이 있었지만 다음날에도 일을 쉴 수는 없었다. 통증이 있을 때마다 마이신을 먹고서 일을 해야 했다. 이렇게해서 나의 왼쪽 눈은 완전히 실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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