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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끝이 없는 주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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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4:29 조회1,7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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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참이 되면서 주방에서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일을 해보니 내겐 주방 일이 적성에 맞았다. 음식 만드는 일을 많이 배울 수도 있었고 면 뽑는 것도 잘 하게 되어 조용한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내가 직접 면을 뽑아서 점심을 먹고는 했다. 또 주방장이 시키는 대로 일하면 요리하고 남은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주방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요즘 같으면 가스나 석유 같은 것으로 음식을 하겠지만 그때는 연탄을 썼는데 가정집처럼 연탄을 통째로 쓰는 것이 아니라 4 등분으로 쪼개어서 큰 아궁이에 장작처럼 쌓아놓아야 했다.
 
  아침저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창고에 가서 연탄을 쪼갰다. 그것들을 큰 함지박에 넣어 들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많은 식기들도 깨끗이 설거지해야 했고 주방에서 쓰는 칼도 갈아놓아야 하고 앞치마도 깨끗이 빨아 주방장이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영업을 마치고 나면 뒷일도 제일 많았다. 주방장도,  주방장 보조격인 라면장도 제 할 일만 하면 주방을 나가기 때문에 내 할 일은 그때부터였다. 설거지면 주방 치우는 것을 다 해야 방에 가서 쉴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열한 시가 넘는 날도 많았다. 그제야 내가 입은 속옷과 옷들도 세탁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으므로 가능한 빨래는 간단하게 했다. 주인한테 얻어온 하이타이를 푼 큰 함지박에 세탁물들을 집어넣고 발로 몇 번 밟아준 뒤 한두 번 헹구었고 홀 테이블이나 의자에 널어놓은 다음 날 아침에 걷었다.

 

  피곤할 텐데도 일을 끝내고 난 형님들은 방에서 화투를 치기도 했다. 나는 그런 것을 할 생각도 없었고 나이도 어렸다. 그 생활 속에서도 공부를 한다고 밤에 영어나 한문을 배우려고 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주위 환경이 그러니 차츰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공부를 완전히 접고 기술을 열심히 배워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것이었다.

 

  순화루에 있으면서 웬만한 중국집의 주방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많이 배웠으나 월급을 많이 올려주지는 않았다. 순화루에는 고참 주방장과 라면장이 이미 있었고 다른 가게로 가서 주방장을 하기에는 아직 경험이나 기술이 미흡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옮기면 주방장의 보조인 라면장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기술도 더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월급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곳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주인에게 그곳을 그만 두겠다는 소리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주인에게 나가겠다고 말을 했지만 선뜻 보내주려 하지 않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이었다. 현실을 정만 가지고 살 수는 없었다. 사람의 인연은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4 년간 정들었던 그곳을 떠나야 할 시기가 온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주인도 좋은 사람이었고 나를 신임해주었지만 계속 그곳에서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주인은 나의 월급을 많이 올려주지 않았다.

 

  어려운 때였으므로 월급을 많이 주는 곳으로 옮겨가고 싶은 건 당연했다. 기술을 배우겠다는 일차적 목표는 달성했으니 다음 단계로 더 멀리 나아가고 싶었다. 더 높이 날기 위해서는 힘차게 날갯짓을 해야 했다. 나는 좀 더 큰 꿈을 가지고 나의 길을 가고 싶었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정식으로는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기회를 틈타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며칠이 지난 뒤 오전에 기회가 왔다. 옷가방은 항시 준비해두었던 터였다. 이로써 오랫동안 정들었던 순화루를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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