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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공부 많이 하면 버릇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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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3:35 조회1,6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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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실명한 이후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두 아들이다. 두 눈을 다 잃었을 때 큰아들 우성이가 여덟 살이었고 작은아들 규민이는 다섯 살이었다. 중국집이나 카페를 운영할 때 큰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집 아이들처럼 학원에도 보내고 먹이고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실명하고 나서는 사정이 달랐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 시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내는 살림 꾸리랴 나를 돌보랴 바빠서 아이들 공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성적은 자꾸 떨어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초등학교 때에는 그 차이를 몰랐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은 뒤떨어졌다.
 
  공부만 잘한다고 인생을 잘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더 잘 해주길 바라는 마음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가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공부를 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못해주는 것이 안타까웠다. 특히 공부를 잘 하는데 뒷받침을 못해주면 부모로서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나를 위로하려고 농담처럼 아이들에게 내가 말했다.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면 어떻게라도 해보겠지만 공부를 어중간하게 하면 어중간한 인생 살며 백수 되기 딱 쉽다. 그러면 그게 더 힘들지 않겠나. 그러니 아주 잘할 거 아니면 열심히 공부하지 마라. 열심히 공부하면 그것도 버릇된다. 그러니 조금만 해라.” 했다. 그랬더니 이 녀석들이 어린 마음에 진짜인줄 알고 아예 책을 덮어버렸다.

 

   큰아들은 야간공고에 입학했다. 낮에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전구공장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학교 가서 공부하고 오면 밤 열시 정도가 되었다. 작은아들도 방학 때에는 제 형을 따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저희들 필요한 것도 사고 용돈도 썼다. 일부는 집에 가져와서 제 엄마에게 맡기기도 했다.

 

  내가 1주일에 용돈으로 주는 1~ 2천 원 정도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저희 스스로 용돈을 벌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던데. 아빠로서 가슴은 아팠지만 일을 다니는 걸 막지는 않았다. 아이들도 공부보다는 일하는 걸 좋아했다.

 

  공부만 해도 대학에 가네 못가네 할 판인데 공장에 다니면서야 말 할 것도 없었다. 성적이 좋아서 대학을 갈 수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내야했겠지만 우리 형편엔 무리였던 건 사실이었다.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군데 이직을 하다가 지금은 삼성전기에 잘 다니고 있다.

 

  작은아들도 공고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할 때까지 실습을 나갔던 금형회사에서 줄곧 일했다. 제대한 뒤에도 다시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 제 몫을 열심히 하고 있다. 공부를 잘하고 뒷받침을 잘 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바르고 곧게 자라주었고 자신의 위치를 다져가고 있다.

 

  나는 두 아들이 큰 문제없이 건강하고 성실하게 성장해준 것이 자랑스럽고 세상에 어느 보석보다도 더 값지다. 지금이라도 공부하겠다면 대학에 보내주고 싶은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아이들이 가끔 아빠 때문에 우리 인생이 꼬였다고 농담처럼 말을 할 때면 미안하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을 지혜롭게 잘 이겨낸 힘은 앞으로 두 아들이 살아가는 데 좋은 거름이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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