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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토성동을 오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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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3:39 조회1,6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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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교시간이 지나고 학생들이 모두 수업에 들어가면 나는 아내와 함께 토성동에 있는 문구 도매상으로 물건을 사러 갔다. 다음날 준비물과 장난감, 새로 나온 과자를 구입했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집사람과 충무동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밥을 빨리 먹고 학생들이 하교하기 전에 물건을 진열해놔야 했다.

 

  나를 도와 장사하랴 살림하랴 아내는 늘 시간이 부족했다. 물건을 빨리 사가지고 와서 팔아야 하니 시장에 가도 빨리빨리 걷고 행동해야 했다. 그날도 시장에 간다고 아내의 손을 잡고 가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버스가 오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갑자기 내 팔을 당기면서 빨리 뛰라고 재촉을 했다. 하지만 눈을 감고 몇 걸음 걸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걷는 것도 아니고 급히 뛰려면 앞에 무언가가 부딪치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내 행동은 느리고 답답했다. 아내가 재차 내 팔을 다시 잡아당겼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엉덩이는 뒤로 뺀 채 어정쩡한 자세로 뛰고 있었다. 몸도 여린 사람이 덩치 큰 나를 잡아끌자니 남들 보기에 그 모양새가 우스웠던 모양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은 웃느라 난리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류장에 도착했으나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아내가 팔을 놓으면서 이렇게 달리기를 못 하는 남자는 처음 봤다고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버스는 이십 분 동안 오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내의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도 눈감고 뛰어봐. 나만큼 잘 뛸 수 있는지.’

 

  우리 가정의 대장 자리를 아내에게 물려준 것이 오래 전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이 책에 넣을 사진을 찾고 있으려니까 내가 자서전을 준비하는 것을 알고 자기 이야기는 넣지 말라고 성화다. 그렇다고 안 할 내가 아니다. 내 평생을 이야기하는데 아내의 이야기가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부이다 보니 가끔 다투기도 한다. 그런데 집안에서 다투다가도 아내와 집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우린 즉시 잉꼬부부가 된다. 내가 앞이 보이지 않아 길 안내가 필요해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이지만 동네 아주머니들 눈엔 다정해 보이는 모양이다. 우리만 보면 저기 잉꼬부부 가네 하면서 칭찬을 한다. 집사람은 언제 나와 다투었냐는 듯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데, 분명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활짝 웃고 있을 게 뻔하다. 방금 다투고 나왔는데 무슨 잉꼬부부?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팔짱을 끼고 아내와 나란히 걷는 순간만큼은 싸운 일도 다 잊고 정말 잉꼬부부가 된다.

 

  시력을 잃기 전 아내는 나의 반쪽이었지만 앞을 볼 수 없게 된 후부터 아내는 나의 눈이고 내 삶의 전부다. 아내가 없었다면 나는 일어설 용기도 살아갈 희망도 붙들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의 내가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물론 부부간이니 때로 다투기도 한다. 가끔 아내는 옛날이야기를 하며 나의 약점을 잡아서 바가지를 긁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 맞서지 않는다. 아내의 말이 다 맞기 때문이고 아내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하기 때문이고 표현하지 못하지만 늘 미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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