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에서는 체육복의 판매 수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었다. 그래서 이웃 문구점 주인에게 체육복을 어디서 어떻게 가져오느냐고 물었더니 절대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서운하긴 했지만 영세한 시장이니 그들의 야박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집사람과 함께 교장선생님을 만나러 학교에 찾아갔다. 내 어려운 처지와 교장실까지 찾아오게 된 사정 이야기를 했다. 교장선생님은 자신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지만 한번 부탁해보라며 체육복을 제작하고 있는 공장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집에 와서 체육복 공장에 전화를 했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체육복을 우리에게도 납품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공장장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기존의 거래를 하고 있는 문방구 주인들과 담합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정중히 부탁도 하고 사정도 했지만 그는 완고했다. 더 이상 좋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정말 못 주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번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기냐고 딱딱거렸다.
막다른 길목 같았다. 찾아가서 사정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여기서 밀리면 체육복 장사는 영영 물 건너갈 것 같았다. 오늘 안으로 체육복 안 갖다 주면 내가 그 공장 확 불태워 버릴 테니 알아서 하소. 이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더 비굴해지고 싶지 않았고 우리 가족들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수화기를 내려놓고 보니 더 사정을 해볼 걸 하는 후회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동문방구 앞에 차가 한 대 와서 섰다. 나는 누군지 알 수가 없었는데 자동차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누구시오?” 하고 물었다.
“체육복 공장에서 왔습니다.”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호라. 공장에 불 지르겠다고 하니 따지러 왔군. 어디 한 판 붙어보자.’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공격태세를 취했다. 그런데 남자가 말했다.
“저는 공장장입니다. 체육복 있는 대로 가져왔으니 잘 파시고 모자라면 나중에 더 주문하십시오. 얼마든지 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어찌된 일인가 어리둥절했다. 아마도 내 진심이 통했던 모양이었다. 거칠게 한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내가 원래 거친 게 아니라 주위 환경이 나를 거칠게 만들고 있다는 걸 공장장도 이해했기 때문에 물건을 가져다 준 것 같았다.
그 뒤로 동아체육복 공장 사장 정현배 씨와도 잘 지내게 되었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커피를 가지고 우리 이동문방구에 들르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가곤 했다. 체육복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살펴서 충분히 갖다 주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그는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지압원에 자주 놀러온다. 그는 올 때마다 집사람이나 손님들에게 말한다.
“저 원장 성질 더럽습니다. 체육복 안 준다고 공장에 불낸다고 한 사람이에요.” 하면서 옛날 일을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러면 모두들 웃곤 한다. 인생의 뒤안길에서 어려운 시절을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열심히 살아온 삶의 소중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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