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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리어카 문방구를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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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3:57 조회1,6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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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를 갔지만 특별히 할 것도 없었다. 돈이 있어서 가게를 열 수도 없었다. 이것저것 궁리 끝에 지난 번 접은 문방구의 남은 물건들을 노점에서 팔기로 했다. 리어카를 하나 구입해서 천막도 입히고 진열장도 만들어 이동식 문방구를 만든 것이다. 많은 물건을 실을 수도 없었고 집에서 멀리 갈 수도 없었지만 그런대로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리어카를 세우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 있으니까 관리실 사람들이 와서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밀리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버텨봤지만 한참 시비 끝에 한쪽 모퉁이로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외쳤다. 당신들이 우리 가족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비를 줄 수 있는가? 도와줄 수 없다면 내가 가족들과 굶지 않을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라고 항변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그 이후로 다른 노점상들도 계속 생겨났다. 장사는 하루 이만원정도 벌이는 되었는데 우리 네 식구가 근근이 살아갈 수 있는 비용이었다.

 

  기존 시장이나 상가가 적은 신개발 아파트 단지여서 한두 군데 상가가 있었지만 노점상에 비해 물건 값이 비쌌다. 손님들이 저렴한 노점상을 찾는 건 당연했다.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도 시력을 처음 잃었을 때보다 편안해졌다.

 

  제각기 다른 장사를 했지만 다들 힘들게 살아가는 처지다보니 상인들끼리 조금씩 친해졌던 것이다.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벌이가 되었고 가족과도 함께 있을 수 있으니 살아갈 자신이 생겼다. 아무리 어렵게 살더라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으니 든든했다. 가족이 이렇게 따스한 줄 그때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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