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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두 눈을 잃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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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3:59 조회1,6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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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양쪽 눈을 실명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그렇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왼쪽 눈은 청도에 있을 때 이미 실명한 상태였다. 부산에 와서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호전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쪽 눈으로 살아왔다. 큰 불편은 없었으나 백내장 수술을 한 후 눈에는 초점은 있으나 수정체가 없다보니 눈동자가 반짝거리지 않았다.
 
  남들이 관심 있게 보면 보통사람들의 눈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머지 한쪽 시력도 좋은 편은 아니어서 안경을 써야 했는데 밖에서 내 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색안경을 썼다. 실내에 들어오면 밝은 브라운색이지만 야외에서는 선글라스로 변하는 안경이었다.

 

  단무지 장사를 하던 시절에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친목단체인 ‘사하충의회’를 만들었는데 내가 그곳의 재무를 맡고 있었다. 봄이면 한 차례씩 관광을 갔는데 한 번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술 취한 친구와 시비가 붙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저 혼자 성을 내더니 내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주변 분들이 뜯어 말려서 나는 제대로 주먹 한번 못 날리고 큰 싸움은 면했지만 하필이면 얻어맞은 눈이 왼쪽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빨갛게 충혈 되고 각막 앞부분에 벌겋게 혈액이 고여 있었다. 어차피 보이지 않는 눈이었으나 아프기도 했고 보기에도 흉했다.

 

  며칠 간 안과에 다녔으나 충혈 된 눈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세포나 신경이 죽어있는 상태여서 앞부분에 고인 출혈이 흡수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각막 주위에 있던 핏자국들이 그대로 선명하게 남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색깔도 더 진해졌다. 가뜩이나 보기에 자연스럽지 않은 눈이었는데 그 일 이후로 색안경을 쓰지 않고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선을 볼 때에도 가능하면 밝지 않은 곳으로 약속장소를 정하고 표정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웃는 것에도 신경을 썼다. 그 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도 혹시라도 알아보고 꺼려할까 봐 매우 조심스러웠다. 치료받던 안과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눈에 맞는 홍채렌즈를 권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렌즈를 맞게 잘 끼는 날에는 괜찮았지만; 렌즈 안에 속눈썹이라도 끼었을 때에는 눈을 쿡쿡 찌르니 아프기도 했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도 해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다행히 결혼식 날에는 렌즈가 맞게 잘 끼워졌다. 렌즈를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불편하다보니 결혼한 후에는 렌즈를 끼지 않고 안경을 주로 썼다.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항상 어두운 곳으로 가서 앉았다. 낮에는 선글라스가 되어서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나 실내에 들어오면 색이 없어지기 때문에 남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기 싫어서였다. 그러다보니 집에 오면 아내와 눈 맞추는 것도 피했다.

 

  저녁에 집에 와서도 씻을 때 빼고는 안경을 벗으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불을 끄지 않은 상태에서 잠이 들 때에도 안경을 쓰고 잤다. 그런 내가 아내에게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초점이 없이 흐리멍덩한 내 눈이 이상하다며 말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나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어쩌면 아내는 그때부터 내가 한쪽 시력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혼 8 년 만에 다시 큰 병원에서 나머지 한쪽 눈마저 수술을 했을 때 아내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양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시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을 이야기하면 나는 물론 아내가 가슴 아파할 것이 두려워서 입을 열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퇴원 후에도 이삼 년간은 처가에 가지 않았다.

 

  처남이나 처남댁에게 이런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대포 아버지에게도 자주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보시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싶었기 때문이다.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진실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을 피했는지도 모른다. 실명한 이후 그 누구도 나에게 자초지종을 상세히 물어온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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