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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나는 정말 시각장애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거부하던 현실을 서서히 인정해야만 했다. 주어진 운명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맡겨진 역할에 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는 것이었다. 복지관에 나오기 전엔 세상에서 나 혼자 시각장애인처럼 느껴져 외로웠지만 복지관에 오니 이전엔 미처 예상치 못한 위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시각장애인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우리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다.
약시들은 어느 정도 보이니까 혼자서도 잘 다녔지만 전맹인 사람들은 도움이 없으면 보행이 어려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 다니다 보니 복지관 건물이 점차 익숙해졌다. 나보다 더 보행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가 터득한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점자를 배우면서 놀이문화도 함께 배웠는데 야구도 하고 탁구도 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과 같은 룰을 가지고 게임을 하지만 공속에 방울이 들어 있어서 소리로 위치를 파악해서 공을 칠 수 있다. 그런 게임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에 흥분이 되기도 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게임을 하는 순간만은 모든 시름을 다 잊을 수 있었다. 야구도 여러 명이 편을 나누어서 했는데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제멋대로 공을 휘두르고는 홈런을 쳤다고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서로 저마다 홈런을 쳤다거나 안타를 쳤다고 우기니 선생님들이 심판을 안 보면 게임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하는 야구를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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