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큰아이가 가게에 나와 있을 때였다. 아이가 당황하는 게 역력하게 느껴졌다. 보이진 않았지만 아이가 사냥꾼에게 쫒기는 꿩처럼 엉덩이는 놔둔 채 리어카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는 “아빠, 우리 반 여학생이 오고 있거든. 잘 보고 있다가 지나가거든 말해라.” 하는 것이었다.
하도 급하니 제 아빠 눈이 안 보이는 것도 잊은 모양이었다. 웃음이 터지려고 했지만 알았다고 답을 하고는 한참을 기다렸다. 아이는 그 여학생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내내 아까 그 우스꽝스런 자세로 있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났을 때 아이가 다시 나한테 물었다. “아빠, 지나갔나?” 당연히 나는 알 수 없었지만 대답했다. “지나갔다. 이제 나온나.” 그런데 하필 아이가 얼굴을 쳐든 바로 그 순간에 여학생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아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는 안 봐도 훤히 보였다. 사춘기가 된 아이는 맘에 드는 여학생 앞에서 노점상하는 아버지를 들키는 것이 창피했을 것이다. “지나갔는지 잘 보고 이야기 해줘야지. 이게 뭐꼬?” 무안해진 아이가 여학생이 지나간 후 툴툴거렸다. “아빠는 뵈는 것도 없는데 여학생이 지나갔는지 아닌지 어찌 아노? 네가 지나갔나? 물어서 그냥 지나갔다 했다.” 나는 자꾸 웃음이 나면서도 미안했다.
아내는 집안일을 해야 하니 아이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장사도 하기 어려웠다. 학교 끝나고 오면 나를 데리고 도매시장에 물건 사러 가기도 했고 장사도 돕느라 다른 아이들처럼 놀지도 못했다. 게다가 또래친구들이 오면 창피하기도 했을 것이다. 아버지 장사 도와주는 건 칭찬을 받아야 할 일이지만 그만한 나이의 아이로서는 부끄러운 게 당연했다. 더군다나 예쁜 여학생 앞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도 매일 나와서 나를 돕는 아이가 고맙고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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