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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호의 세상사는 이야기 뵈는게 없으면 겁나는게 없다

밀크셰이크와 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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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만호 작성일09-05-20 13:52 조회1,7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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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를 구입하여 봄부터 가을까지 밀크셰이크를 팔았다. 기계를 돌리려면 전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집에서 이동문방구까지 전기를 연결했다. 밀크셰이크가 만들어지기까지 한두 시간은 준비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셰이크가 얼마나 만들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긴 국자를 구입하여 셰이크가 얼지 않게 한 번씩 저어주어야 했다.
 
  시간을 놓치면 너무 얼어서 아내가 일일이 컵에 퍼 담아 주기도 했고 나 혼자 있을 때에는 컵에 담다가 셰이크를 흘린 적도 많았다. 그래도 여름에는 밀크셰이크 기계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런데 같은 기계를 몇 년 쓰다 보니 아이들도 물리는 모양이었다. 마침 자동 빙수기계가 새로 나왔다며 영업사원이 소개를 했다. 얼음만 기계에 넣으면 자동으로 빙수가 되어 나온다는 것이었다. 내가 쓰기에도 편할 것 같아서 예전 밀크셰이크 기계는 헐값에 팔고 새 빙수기를 들여놓았다.

 

  기계 값이 삼백만 원 가까이 되었는데 할부도 되고 마음에 안 들면 반품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사용해보니 설명하고는 달랐다. 반 수동이었는데 밀크셰이크 기계보다도 사용하기가 더 까다로웠다. 반품하겠다고 하자 영업사원은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녹음기를 내밀었다. 혹시 몰라서 구입 당시 반품이 가능하다고 하던 영업사원의 이야기를 몰래 녹음해두었던 것이었다. 그는 당황하며 마지못해 반품해주었다. 하지만 할부금은 계속 빠져나가고 있었다.

 

  기계를 살 때 캐피탈금융에 자동이체가 되도록 해놓은 것이 잘못이었다. 소비자센터에 알아보니 영업을 목적으로 한 것은 구제받을 길이 없다고 했다. 법률구조센터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니 서류를 작성해주었다. 얼마 뒤 서류 재판에서 승소했고 그가 물금에 살고 있다는 곳을 수소문 끝에 알아냈다. 마침 방학 때라 가게는 아내에게 맡기고 옷가방과 책,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돈 받으러 갔다.

 

 돈을 줄 때까지 그 집에서 머물기로 작정하고 간 것이다. 이판사판이었다. 내겐 피 같은 돈이었다. 어디 속일 데가 없어서 나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속였는지 괘씸했다. 독이 머리끝까지 차 있었다. 겁나는 것도 없었고 무서울 것도 없었다. 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판결문만 가지고 부산역에 가서 열차를 탔다. 물금은 부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열차에서 내리자 역무원이 나와서 “택시를 잡을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경찰차를 불러달라고 했다.

 

  잠시 후 경찰관이 왔고 나는 그에게 판결문에 있는 주소지로 나를 안내해달라고 했다. 경찰관이 그 이유를 물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지금까지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했다. 연락을 받고 자판기 영업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의 아버지가 파출소에 뛰어왔다. 순순히 판결문에 있는 돈만 주면 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은행까지 따라 갔다가 혼자서 돈을 받는 것보다는 증인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파출소로 와서 경찰관 앞에서 돈을 받았다. 이자는 못 받았지만 원금만이라도 해결되어서 기뻤다. 경찰관이 점심도 사주고 물금에서 호포 지하철역까지 나를 태워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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