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많아지다 보니 다대포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뵙는 일이 드물어졌다. 기력이 전 같지 않은 아버지를 보는 것이 괴롭기도 했다. 그때 드는 생각이 나만 믿고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가 장애를 갖게 된 자식을 보며 사는 안타까움은 얼마나 컸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이런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로서는 내가 찾아뵙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아예 발을 끊은 지 오래였다. 말년에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버지가 너무 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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