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년의 힘든 생활 끝에 받은 한 장의 안마사 자격증이 우리 가족에게는 꿈이요 희망이었다. 이제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빈곤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그 힘든 생활에서도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열심히 다닌 결과 여기서도 개근상을 받았다. 상 받는 것도 좋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상품권을 받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내가 졸업하기까지 아내는 말할 것도 없이 내가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졸업을 하게 만든 일등공신이었고 아들들도 내가 공부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가 처음 침을 배울 때에는 연습할 대상이 없으니 천 원씩 주면서 아이들을 엎어놓고 침술을 연습했다. 아이들은 돈 받는 재미로 했지만 그들이 나에게는 마루타였다. 내 아이들을 시험 삼아 하는 공부였으니 나로선 더욱 조심스럽고 마음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KBS방송국에서 나를 취재하여 방송에 잠깐 나간 적이 있었다. 내 살아온 인생여정이 간략히 소개된 것인데 우성이가 물었다. “아빠 혼자서 다한 것이 아닌데 왜 아들 얘기는 안 했노?”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라 창피하다며 학교에도 오지 못하게 하던 녀석이 어느새 내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철이 든 모양이었다.
이번엔 시간이 짧아서 못했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우성이와 규민이 이야기를 꼭 하겠다고 약속했다. 둘째가 다시 으스댔다 “아빠가 오늘에 있기까지 우리가 없어봐라. 아빠가 원장님 되었겠나.” 나는 그런 아들 녀석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고놈들, 생색은 되게 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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