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홀로 남은 아버지를 보살피기로 했다. 한 집에서 모시지는 못했지만 아버지가 계신 다대포를 자주 찾아뵙는 것으로 대신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어느 정도의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내가 만든 반찬을 가져다 드리고 청소와 빨래도 해드렸다. 그러다가 일주일 내내 같은 반찬을 드시게 하는 것보다는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그때그때 해 드실 수 있도록 가까운 슈퍼마켓에 배달을 부탁했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을 주문하면 배달을 하고 내가 올 때마다 지불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안마협회에 가서 공부도 해야 했고 이동문방구 장사도 도와야 하니 아침저녁으로 전화는 드렸으나 아버지가 계신 다대포를 찾아가 뵙는 것은 일요일이 아니면 어려웠다. 문방구에서 번 돈을 쪼개 매달 슈퍼에 지불할 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가까이 모시고 싶었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멀리 병든 몸으로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맘이 편치 않아 자다가도 잠이 깨어 오래 뒤척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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