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구포복지관의 이경희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2005 년 겨울
복지관 재활팀 수료식에서 사례발표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포항에 있는 한국시
각장애인연합회 경북지부에서 연락이 왔다며 ‘시각장애우 기초재활 검정고시 합
격자 수료식’에서 사례발표를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사람들 앞에 서서 내가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게를 하루 쉬는 것도 쉽게 결정할 일은 아
니어서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강연을 수락했다. 내가 강의를 하게 됐
다는 소식을 듣고 몇몇 손님들이 자기 차로 편하게 갔다 오자고 했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다. 자동차로 쉽게 가는 일은 재활과 자활을 통해 자립하게 됐다는 강연을
하러 가는 사람의 맞는 모습이 아닌 것 같았다. 혼자서 그곳에 가는 것을 보여주
는 것만으로도 내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일이라 생각
했다.
포항에 가는 날 아침 어느 날보다 긴장이 되고 한편으로는 약간의 흥분도 되었
다.
어릴 때 소풍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보행에 있어서만은 주저 없이 걷는다. 물론
지하철을 타고 버스 터미널까지 가려면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또 나를 도와줄
오늘의 인연은 반드시 나타날 것을 믿었다.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사람들도 어떻
게 도울지 모른다. 하지만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을 베푼다는 것을 나
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길을 찾을 때는 무조건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게 좋았
다. 최소한 방향만은 제대로 잡을 수 있었다. 창피할 것도 없고 기죽을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물어물어 터미널까지 갔다. 버스가 막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당당히 포항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달리는 동안 생각이 많았다. 내가
과연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
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은 복잡했다. 내가 살아온 그대로만 이야기하자고
생 각했다. 참 감회가 새로웠다. 정말이지 세상은 오래 살아볼 일이었다. 초등학
교 밖에 나오지 않고 자장면 배달과 주방장을 하던 내가 그리고 실명까지 한 내
가 사람들 앞에 서서 내 인생을 이야기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버스의
속 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어느덧 포항에 도착한 것이다.
장애인연합회에서 나온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왔냐며 놀란 직원이
물었다. 당연히 혼자 오지 그럼 누구와 함께 오겠느냐고 했다. 나는 지팡이 하나
만 있으면 서울도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곳 시각 장애우들은 혼자서는 보행
을 어려워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은 들으니 역시 혼자 오기를 잘 한 것 같았다.
내가 혼자 버스를 타고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내가 온 이유는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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