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다.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나를 다른 식구들과 똑같이 대우를 한다. 밥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앞이 안 보인다고 해서 따로 챙겨주지 않는다. 알아서 찾아 먹어야지 안 그러면 손해다. 작은아들이 고등학교 다니던 여름이었다.
그날의 별미는 풋고추였다. 향긋한 풋고추를 다들 된장에 찍어먹으며 맛있다고들 했다. 나에겐 된장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풋고추를 들고 식탁을 더듬거리다 보니 무언가가 찍혔다. 푹 찍어서 고추를 입에 넣는데 킬킬거리며 아들이 웃었다. “내 머리털 나고 풋고추를 자기 밥에 찍어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궁색하게 대답했다. “너희도 눈감고 먹어봐라. 나보다 더 흘리면서 먹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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